일본 '전력 자유화 10년의 명암’

소비자선택권 커졌지만 위기땐 흔들

2026-05-07 13:00:26 게재

신규 사업자 761개 급증, 요금다변화 … ‘역마진’ 파고에 4곳 중 1곳 사업 중단

일본이 2016년 전력 소매시장 전면 자유화를 단행한 지 10년.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요금 경쟁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2022년 글로벌 에너지위기 국면에서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초기엔 전기요금 인하 효과 = 7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일본 전력 소매시장 자유화 10년의 성과’ 보고서에서 “일본은 과거 지역별 민간 전력회사가 발전·송배전·소매를 수직통합해 독점 공급하는 체제였다”며 “전력요금 경쟁력 저하와 세계 규제완화 흐름이 맞물리며 1995년부터 구조개편이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개혁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1995년 발전부문 경쟁도입을 시작으로 1999년 대형 수용가, 2004~2005년 중소형 사업자까지 소매시장을 부분 개방했다.

이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대규모 발전설비가 멈추면서 기존 지역독점 체제의 한계가 노출됐고, 일본정부는 전면적인 전력시스템 개혁에 착수했다.

이에 2015년 광역계통운영기관 설립, 2016년 소매시장 전면 자유화, 2020년 송배전 법적 분리 등 ‘3단계 개혁’이 완성됐다.

자유화 초기 성과는 뚜렷했다.통신·가스·철강·철도 기업까지 시장에 뛰어들며 2025년 기준 신규 소매사업자가 761개까지 증가했다. 전기·가스·통신 결합상품, 재생에너지 특화요금제, 시간대별 요금제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고, 소비자 선택권도 크게 확대됐다.

신전력사업자의 판매 점유율은 2016년 5.2% 수준에서 2024년 17%까지 상승했고, 가정용 저압 시장에서는 약 23%를 차지했다.

전기요금 인하 효과도 일부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기를 제외하면 자유요금제가 기존 규제요금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다고 평가했다.

◆러-우 전쟁후 전력난민 발생 =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취약성이 드러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LNG와 발전용 석탄 가격이 폭등하자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사와 판매하던 신전력사업자들은 대거 무너졌다.

자체 발전설비가 없는 구조에서 도매가격이 소매요금을 뛰어넘는 ‘역마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2024년 3월 기준 32개사가 파산·폐업했고, 87개사는 시장 철수, 69개사는 계약 중단 상태에 몰렸다. 당시 전체 신전력사업자의 약 28%가 사실상 사업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는 이른바 ‘전력난민’ 현상까지 발생했다. 값싼 요금을 찾아 신전력사업자로 이동했던 소비자들이 공급중단 이후 기존 대형 전력회사로 복귀하려 했지만 대형사들이 신규 계약을 거부하면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022년 10월 기준 전력난민 규모는 약 4만5871호, 계약전력은 6851MW에 달했다. 이들은 일반요금의 120% 수준인 ‘최종 보장 공급’ 전기를 사용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자유화 이후에도 기존 대형 전력회사의 지배력이 유지됐다는 점이다. 일본의 기존 지역독점 전력회사들은 여전히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약 80%를 보유하고 있으며, 소매시장 점유율도 83% 수준이다.

2020년 송배전 부문 법적분리 이후에도 일부 대형 전력회사들이 송배전 자회사 고객 정보를 무단 열람하거나 카르텔을 형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전력시장 방향성을 수정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향후 정책 방향으로 △안정적 공급을 전제로 한 탈탄소 추진 △계통망 확충과 유연한 수급 운영 △소매사업 환경 정비와 소비자 보호를 제시했다.

특히 발전원 투자 확대와 안정적 공급력 확보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AI 확산과 디지털 전환(DX), 탈탄소(GX) 투자 확대 등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형 전력 개편을 위한 5대 과제 =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공개한 ‘전력시스템 개혁 검증 결과와 향후 방향성’ 보고서를 통해 “소매경쟁은 일반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국제 연료가격 급등과 같은 위기 상황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한국이 전력 소매시장 개편을 검토하려면 일본처럼 ‘빅뱅식 개방’보다 대용량 수용가부터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며 “송전망 운영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가 경쟁 도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전제 조건”으로 지목했다.

이어 △전기요금 정상화 △독립 규제기구 신설 △단계적 시장 개편 로드맵 수립 △송배전·판매 회계분리 △최종공급자 제도 등 공급자 리스크 관리 안전장치 마련 등이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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