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일구는 사람들 ⑩ 박재민 그리코(GRICO) 대표
버려지는 농산물로 생분해 비닐 생산…나프타 대체
농식품부산물 처리에 석유계 플라스틱 대안 ‘일거양득’
상온·바닷물에서 완전분해, 생분해 기간도 조절 가능
“자연에서 얻은 소중한 자원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줘”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강력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세계는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속되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사상 최대 수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수출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 성장은 혁신정신이 일궈 온 성과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가를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기후위기시대다. 지구촌이 극심한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탈탄소는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한다. 기업들도 탈탄소 기술개발에 적극 나선다.
대표적인 탈탄소 행보는 플라스틱 규제다. 플라스틱의 99% 이상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다. 플라스틱 제조과정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동반한다.
플라스틱은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양산한다. 탈플라스틱이 탈탄소의 직접적인 행동인 셈이다. 탈플라스틱은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탈플라스틱 대안은 백가쟁명(百家爭鳴) 상황이다.
국내 스타트업(기술창업기업)이 진정한 탈플라스틱을 선언했다. 개발한 플라스틱 소재는 해양과 상온에서 완전히 분해된다.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소재의 배합비율로 상온에서 생분해 기간을 조절할 수 있다. 최근 가평지역 농가에 봄 작물 멀칭필름을 공급했다. 이 비닐의 자연분해 기간은 3개월이다. 3개월 후 농가들이 봄 작물을 수확할 때면 멀칭비닐은 자연분해 돼 사라진다는 얘기다. 최근 불안정한 비닐원료 수급위기에 대체할 소재로도 손색이 없는 셈이다.
주인공은 올해 세살 된 그리코(GRICO)다. 그리코는 잉여 곡물, 폐기된 해조류 등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한 탈플라스틱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3개월 후 자연분해되는 멸칭필름 = “그리코는 자연순환형 친환경 전문기업이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그리코공장에서 만난 박재민 그리코 대표는 ‘자원의 순환’을 강조했다. 자연에서 얻은 자원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순환구조 원리를 사업에 담았다는 의미다.
그리코 주력사업은 친환경 생분해·바이오플라스틱 분야다. 소재는 잉여농산물이나 농수산 폐자원 등을 활용해 만든다.
소재는 비닐류와 용기류, 포장재 제품의 원료가 된다. 현재 비닐류는 일회용 봉투를 비롯해 농업용비닐, 산업용 비닐포장재를 양산하고 있다. 수저 빨대 용기 식탁보 손장갑 랩 등 일회용품은 위탁생산하고 있다.
감자 고구마 양파 배추 무 등 식품산업에서 버려지는 부산물과 남는 쌀 등 잉여곡물이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으로 탄생하는 셈이다. 제품은 탄소를 품은 채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바로 자연순환이다.
박 대표는 “농식품 부산물과 폐자원으로 바이오플라스틱을 제품화한 곳은 그리코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리코는 주로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를 기반으로 공공기관과 자연순환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4월 경기도농수산진흥원과 손잡고 공공급식에서 발생한 농산물 부산물(양상추 껍질)을 활용해 농업자재와 유통포장재로 재탄생시켜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농업용 멀칭필름은 가평지역 4개 농가에 공급해 감자 고구마 등 봄농사에 사용됐다.
멀칭필름 분해기간은 3개월이다. 봄작물을 수확할 때쯤이면 자연분해 된다. 일반 비닐처럼 농사 후 걷어낼 필요가 없다.
숙박플랫폼 야놀자와 협약을 맺고 숙박업소에 사용되고 있는 욕실용 파우치를 공급하고 있다.
피자헛의 택배봉투도 그리코가 제공한다. 화성시환경재단과는 쓰레기종량제봉투를 생분해 잉여쌀 봉투로 대체했다. 광주광역시에는 쌀로 만든 종량제봉투를, 일부 기업에는 쌀로 만든 포장재와 생활용품을 제공하고 있다.
◆천연유기물 활용해 물성 조절 = 그리코의 농식품 부산물 바이오플라스틱 복합체소재 기술은 1차(개질)와 2차(유기물 결합) 과정을 거친다.
1차는 농산물을 건조한 후 0.05~1mm 크기로 분쇄한다. 분말을 고속혼합기에 투입해 고분자와 저분자를 하나의 구조로 만든다.
2차는 부산물별 생분해성 고분자 분말에 7~11종의 천연보강제(유기물)를 결합하면 내열성 인장 강도 등 물성이 결정된다. 이를 적정온도에서 지름 2~3mm 크기의 팰릿으로 만든다.
박 대표는 “1차와 2차 과정에서 생분해성 분말과 유기물 결합방식에 따라 생분해 기간 등 고객 맞춤형 기능성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원료가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코가 확보한 생분해 조절기간은 3개월부터 5년까지다.
그리코는 3년간 30억원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했다. 양산화에도 성공했다. △부산물을 초미립자 형태로 분쇄해 개질(생분해성 고분자 분말) △혼합소재 간의 단량체 형성 구조화 등 핵심기술을 특허등록했다.
국내외에 3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EU) 농산물 원천특허 △미국 생분해성(BPI) 인증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식품용기 적합 인정 △유럽(EU) 생분해성 인증 등도 획득했다. 생분해성 수지원료는 환경부 녹색기술인증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박 대표는 “그리코 제품은 기능이나 비용측면에서 경쟁력이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다.
자신감 근거는 △농수산 폐자원을 활용한 원가 경쟁력 △125도 이상의 내열성 △상온에서 자연분해 △미세플라스틱 미발생 △부산물 미발생 등이다. 기존 생분해 플라스틱은 퇴비화 조건(58도)에서 180일 지나야 90% 분해된다. 현재 공급가격도 기존 석유계 비닐 가격과 같거나 30% 정도 인상된 가격에서 결정된다.
◆벤처투자로 양산설비 구축 = 박 대표는 2019년도 잉여 쌀과 곡물 등으로 천연오일 추출에 도전했다. 이때 추출 후 남는 부산물이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분해 플라스틱 신소재 개발에 도전하게 됐다. 강도 유연성 등 물성해결 과정에서 숱한 실패를 맛봤다. 필요한 장치도 직접 개발해야 했다.
하늘은 땀을 외면하지 않았다. 최근 양산화를 위한 벤처투자 시리즈A(20억원) 유치에 성공했다. 자금으로 팔탄면 공장에 양산설비를 구축 중이다. 6월 이후에는 월 1000만장의 생분해 비닐봉투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그리코는 글로벌 생분해 플라스틱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직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급성장하는 유망한 시장이다. 생분해·바이오플라스틱시장은 전세계적 탄소중립 정책과 플라스틱 규제 강화로 급격히 성장하는 분야다.
“생분해 플라스틱시장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나프타를 대체하며 ‘플라스틱 경제’의 구조변화를 이끌 것이다.”
박 대표와 그리코의 탈플라스틱 행보가 막 시작됐다.
화성=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