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 전단채 피해자 ‘피눈물’

“10년 저축, 퇴직금까지…남편은 아직 몰라요”

2026-05-13 13:00:21 게재

60대 주부 A씨, ‘안전자산’ 믿었는데 “노후자금 사라져”

80대 B씨 “PB, 회생신청 직전까지 사후통보식 재투자”

“시중 보통예금보다 조금 나은 금리를 찾았을 뿐인데 노후자금이 사라졌다.”

영남지역에 사는 60대 주부 A씨는 극도의 불안증세와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에 다닌 지 1년이 다 돼 간다. 12일 통화에서 그는 “수면제의 힘을 빌어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기치고 호의호식, 서민 벌레취급” = A씨는 지난해 2월 25일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ABSTB)를 1억원어치 샀다. 10년 동안 매달 50만원씩 저축한 돈에 남편의 퇴직금 일부를 보태 장만한 노후자금이었다.

A씨는 지난 몇 년간 단기채권 소액거래에 재미를 붙였다. 채권은 주식처럼 위험하지 않고 일반 저축보다 금리가 좋은 ‘안전자산’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믿고 거래하던 유진투자증권을 통해 홈플러스 전단채를 소개받았다. A씨는 “그곳 직원(PB)이 ‘저희 가족도 (전단채 투자를) 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상품설명 중에 ‘위험부담’ 문구가 있었지만 “상식적인 것” “형식적인 표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불과 일주일 후인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이름 대면 알 만한 회사들이 즐비한데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겠나 싶었다. 전단채가 휴지조각이 됐다는 유튜브 영상이 돌았지만 증권사에서는 ‘가짜뉴스’라고 했다.

그 상태로 봄이 끝나갈 무렵, 불면증과 불안증세가 나타났다.

A씨는 “남편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며 “사태 해결을 기다리다 알리지 못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나버렸다”고 털어놨다. “남편이 (홈플러스)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 할 때마다 속이 썩어들어간다”고도 했다.

A씨는 “회생신청 직전까지 서민들을 상대로 (전단채를) 파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40년 동안 피땀흘려 모은 돈을 사기쳐서 빼앗은 사람이 호의호식하게 두는 일은 서민을 벌레취급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김병주 사재 4조원이니 괜찮다”던 증권사 = 수도권에 사는 80대 주부 B씨는 지인의 권유로 하나증권을 통해 2024년 9월부터 홈플러스 전단채에 투자를 했다. 투병 중인 손위 형제의 돌봄과 자산관리까지 책임졌던 그는 홈플러스 사태로 10억원 가까운 돈을 물렸다. 평안해야 할 황혼기에 가족관계와 사회생활이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B씨에 따르면 전단채 매입은 12월 5일과 2025년 2월 25일 추가로 두 번 더 이뤄졌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증권사가 ‘사후통보’ 식으로 진행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B씨는 “(직원이) ‘이자가 잘 나왔다’며 만기에 찾은 돈을 2024년 12월 5일 재투자 하더니 2월 25일에 추가투자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율이 낮더라도 안전한 데 넣어야 하는 돈”이라고 걱정하자 그 직원은 “석 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MBK 회장) 김병주 사재가 4조원이니 괜찮다”며 장담을 했다고도 했다.

B씨는 “재투자 때는 내가 서명을 한 기억이 없다”며 “나중에 보니 첫 번째 투자 때 서명한 양식을 그대로 복사해서 넣었더라”고 말했다.

재투자한 돈이 묶여버린 B씨는 마음이 무너졌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우울증과 만성 수면부족에 무릎통증·신경성대장증후군·이석증·구강염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건강 이상으로 한 달에 한 번 나가던 동창 모임에도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는 12일 대화 중에도 “혀가 다 헐어서 아프다”며 “연고를 발라도 낫지 않은 지 3주가 됐다”고 말했다.

B씨는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삶의 의욕을 잃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도둑놈처럼 보인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하나증권을 때려부수고 싶다”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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