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잭팟’에 성장률 2.5%↑… KDI, 한국 경제 ‘터닝포인트’ 선언
경상수지 흑자 2400억달러 전망 ‘사상 최대’ … AI 반도체 특수가 체질 바꿔
중동 리스크·삼성전자 파업 ‘하방 변수’ … 올해 물가상승률은 2.7%로 상향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대폭 올려 잡으며 경기 회복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초 1%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비관론을 뚫고,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출 호조가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국은행도 조만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것으로 보여,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나온다. 실제 최근 글로벌투자은행들도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상향조정했다.
◆보수적 전망 대표주자 KDI의 ‘변심’ = 14일 KDI에 따르면 전날 발표한 ‘2026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제시했다. 지난해 말 전망했던 1.8%에서 0.7%포인트(p) 상향된 수치다. 통상 정부보다 보수적인 수치를 내놓는 KDI가 정부의 현 전망치인 2.0%를 0.5%p나 앞지르는 수치를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상향 조정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 수출’이다. KDI는 올해 총수출 증가율을 기존 2.1%에서 4.6%로 두 배 이상 높여 잡았다. AI 붐에 힘입어 글로벌 반도체 거래액 증가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중동전쟁의 부정적 영향(약 -0.5%p)을 반도체 수출의 긍정적 영향이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경상수지 2400억불 신기원 예고 = 수출 호조는 경상수지 지표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KDI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1230억달러)의 약 두 배인 2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2000억달러 선을 넘어서는 것은 한국 경제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반도체 수출 ‘물량’ 증가뿐만 아니라 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가격’ 상승이 경상수지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수출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전형적인 ‘회복 시나리오’가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물가 전망치는 2.7%로 종전보다 0.6%p 상향 조정돼, 고물가가 가계 소비 회복을 제약하는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KDI가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 수정도 임박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지난 11일 “올해 성장률은 2%를 상회할 것”이라며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한국은행 역시 오는 28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기존 2.0%인 수치를 대폭 상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시장의 시각은 더욱 뜨겁다. 주요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는 2.4%로 올라섰으며, JP모건(3.0%)과 씨티(2.9%) 등 일부 기관은 이미 3%에 육박하는 성장을 예견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수혜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수치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 장밋빛 전망 속에서도 고개를 드는 불안 요소는 존재한다. 복병은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가능성이다. 이번 성장 엔진인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공들여 쌓아온 상향 기조가 한순간에 붕괴할 수 있어서다. KDI도 반도체 생산 차질을 주요 ‘하방 위험’으로 지목했다. 구 부총리는 “전 세계가 한국 반도체 칩을 구하려 오는 중요한 시기에 노사 갈등으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며 긴급 조율에 나선 상태다.
아울러 여전한 중동 전쟁 리스크와 이에 따른 고유가 지속 여부도 하반기 성장률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남아있다. KDI는 이번 전망치인 2.5%가 하반기에는 중동 상황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기초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유가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하반기에도 100달러 안팎의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수입 원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며 전망치 달성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실제로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2.7%로 상향 조정된 점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수출이 아무리 잘 나가도 고유가와 고물가에 막힌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의 온기가 서민 경제로 전달되기 어렵다. 결국 2.5%라는 숫자는 반도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은 결과물이지만, 내부의 노사 갈등 해결과 외부의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가 완벽히 조화를 이뤄야만 도달 가능한 ‘조건부 목표’인 셈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