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일시금 인출 83.5%…금감원, 연금수령기간 장기화 유도
‘장수리스크’ 대응 방안 논의, 조기인출 최소화
20년 초과 연금 상품 신설, 실적배당보험 활성화
미국은 지수연계형 연금 급성장, 점유율 25% 달해
지난해 퇴직연금 수령을 시작한 가입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연금 대신 일시금 수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을 목돈처럼 한꺼번에 찾아 쓰는 관행이 노후 빈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장기 연금 수령을 유도하고 종신형 연금 및 장기 운용 상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14일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퇴직연금의 장수리스크 대응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60만1000명 중 50만2000명(83.5%)이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연금 형태로 수령한 인원은 9만9000명(16.5%)에 그쳤다. 연금 수급자 중에서도 약 82%는 10년 이하 단기 연금을 선택했다. 연금수령자의 연금기간 분포를 보면 5~10년이 64.3%로 가장 많고, 5년 이하(17.5%), 10~15년(9.1%), 15~20년(6.8%), 20년 초과(2.3%) 순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다수의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목돈 또는 단기 자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시금 수령 또는 단기 연금 선택이 일반화되면 기대수명 증가로 길어진 노후 기간 동안 안정적인 소득 흐름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기복 금감원 연금감독실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연금 수령에 따른 세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가입자는 일시금 형태로 인출하고 있다”며 “노후 보장을 위한 소득을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퇴직연금의 장수리스크 대응 방안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연금 수령 유도를 위해 조기 인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55세 미만 가입자가 은퇴 전 실직 등으로 생활자금이 필요할 경우 담보대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개인형퇴직연금(IRP) 해지를 줄이고 노후자금이 연금 형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김대환 동아대 교수는 “적립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등 가능한 장기간 가입자가 퇴직연금 제도를 유지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민사집행법은 급여채권의 절반에 대해 압류를 금지하고 있으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역시 퇴직연금 수급권을 원칙적으로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퇴직연금이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생계자금이라는 점을 고려해 압류나 채권자 추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다만 주택 구입, 전세보증금, 장기요양 등 일부 예외 사유에 한해 담보 제공이 허용된다.
퇴직급여법상 퇴직연금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사유가 좁기 때문에 IRP 해지를 막기 위한 담보대출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는 법개정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함께 연금 수령기간 장기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될 전망이다. 김 실장은 “현재 종신연금은 생명보험사 사업자를 통해서만 가입이 가능하고 일부 사업자는 연금 수령기간을 제한하고 있다”며 “신탁형 가입자가 장수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연금 수령기간 장기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 증권 등 신탁형 가입자가 가입할 수 있는 ‘사망시 남은 적립금 반환 종신연금’ 상품을 개발하고 추후에는 연금 인출 시점에 일반 종신연금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연금 인출 기간을 20년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에 대해 20년 초과 연금 상품 신설을 지도하고, 퇴직연금 사업자 평가시 ‘장기(10년 초과) 연금 수령 실적’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연금 수령 시기에 적합한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장기간의 연금 수령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부재하다”며 “연금 수령 시기에 적합한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활성화 및 안정적 수익 상품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11월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은 1개에 불과하다.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은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수취한 보험료를 펀드 등 실적배당상품으로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수익 발생시 연금 지급 기간이 늘어나고 손실 발생시에도 최초에 정해진 최저 연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김 실장은 “보증기간 및 주식편입비율 등 다양한 조건을 갖춘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상품 출시를 지원하고 연금 수령 기간 중 원금 손실을 제한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상품 개발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수연계형 연금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채권이자율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주가지수 상승시 추가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지수연계형 연금은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두배 이상 성장해 전체 연금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일부 사업자가 연금 수령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고, 가입자가 보다 다양한 연금 수령 기간과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상품 다양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논의된 내용을 종합해 퇴직연금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또 퇴직연금 사업자 및 관련 협회들과 함께 하반기 중 퇴직연금 가이드북을 제작 발표할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