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남고 일의 방식만 달라진다
고용정보원 “AI 시대 감소 직업 0개” … 창구·단순 업무 축소, 판단·돌봄 중심 재편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 전망에서는 향후 10년간 ‘감소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직업 자체가 유지된다는 의미일 뿐, 실제 업무 상당 부분은 AI와 자동화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공지능 시대 변화가 ‘직업 소멸’보다 ‘업무 재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공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 182개 직업 가운데 ‘감소’로 분류된 직업은 없었다. 전망 결과는 △증가 9개(4.9%) △다소 증가 47개(25.8%) △현 상태 유지 114개(62.6%) △다소 감소 12개(6.6%)로 나타났다.
전체의 62.6%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30.7%는 증가 또는 다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 셈이다.
겉으로 보면 인공지능 충격에도 직업 세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핵심 변화는 ‘직업 감소’보다 ‘업무 변화’에 가깝다. 보고서는 인공지능이 생성형 인공지능, 멀티모달 인공지능, 에이전틱 인공지능으로 발전하면서 기존 사무직뿐 아니라 정보기술 개발, 디자인, 회계 같은 전문 직무까지 영향을 넓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안드로이드 로봇, 자율주행 같은 ‘피지컬 AI’가 확산하면 생산·운송 같은 현장 노동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자리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는 비교적 뚜렷하다. 보고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의료·돌봄·생활지원 수요 확대, 건강 예방·재활·정신건강 관리 확대, 디지털 전환에 따른 행정·금융·데이터 관련 업무 증가를 주요 흐름으로 꼽았다. 문화·콘텐츠 소비 증가와 K-콘텐츠 확산, 외국인 증가와 관광 활성화, ESG·친환경 대응 확대도 일자리 증가 요인으로 제시됐다.
반대로 감소 압력이 큰 분야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다. 보고서는 △AI·자동화에 따른 반복 업무 감소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단순 창작·디자인 업무 축소 △저출산·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아동·청소년 관련 직무 감소 △비대면·셀프서비스 확대에 따른 접객 인력 감소 등을 주요 변화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은행원이라는 직업 자체는 유지되더라도 창구·출납 업무 비중은 줄고 디지털 금융·자산관리 업무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회계 직무 역시 입력·검산 같은 단순 업무는 자동화 압력이 커지는 반면 데이터 분석과 위험관리 업무 중요성은 높아질 수 있다. 디자이너와 콘텐츠 제작 직군도 직업 자체는 남지만 배경 제작이나 단순 편집, 보조 디자인 같은 업무는 생성형 AI가 대신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상담원 직군 역시 단순 응대는 챗봇이 맡고 사람은 복합 민원이나 판단이 필요한 업무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AI 시대 핵심 변화가 ‘직업 소멸’보다 ‘업무 분리와 재구성’이라고 설명한다. 직업이 유지된다고 해서 기존 일자리 모습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직업은 남더라도 그 안의 업무 상당 부분은 AI가 맡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고용 숫자가 유지되더라도 현장 체감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중간숙련 일자리가 줄고 플랫폼 기반 단기 노동이나 외주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단순한 고용 숫자보다 일자리 질 변화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보고서는 AI 영향이 기존 화이트칼라를 넘어 블루칼라 영역까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번 보고서는 생성형 AI를 공식 활용해 작성한 점도 특징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제미나이(Gemini), 챗GPT(Chat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등을 활용해 직업별 전망 초안을 만든 뒤 전문가 검증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생성형 AI 활용으로 자료 수집과 분석 효율성이 높아졌고 절감한 시간과 예산을 전문가 검증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다만 AI가 제시한 통계·법령·제도 정보는 반드시 원 출처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