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순수시스템 자료 유출 혐의 인정
1·2심, 징역 3년 … 산업기술로 인정 안해
대법, 파기 환송 … 산업기술 인정, 법리오해
중국 반도체 컨설팅 기업 이직을 앞두고 삼성엔지니어링(현 삼성 E&A)의 영업비밀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전 직원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과 같이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산업기술로 인정하지 않은 원심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며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4일 오전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 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원심에서 초순수시스템 설계 및 시공 기술이 첨단기술로서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초순수시스템 시공 관리와 발주처 대응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19년 1~2월 초순수시스템 설계 도면, 설비 시방서(기준서) 등 회사 영업비밀이 담긴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관련 출력물을 주거지로 가지고 나와 보관했고, 2019년 2월쯤 중국 반도체 컨설팅 기업의 초순수 담당자로 이직하기 위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또 다른 엔지니어 B씨의 부탁을 받고 초순수시스템 운전 매뉴얼, 시공 개선 자료 등 영업비밀을 넘긴 혐의도 받는다. 영업비밀을 받은 B씨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초순수(Ultra Pure Water)는 물속이온, 미생물 등 각종 불순물을 최대 10조분의 1 단위까지 제거한 순수에 가까운 물로,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각종 세정작업에 사용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06년부터 매년 300억원 이상 연구개발비를 들여 초순수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1심은 두 사람의 혐의 대다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B씨는 항소 없이 형이 확정됐고, 2심은 A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다만 1·2심은 초순수시스템 기술이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만 산업기술보호법상 ‘첨단기술’로 지정된 산업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A씨의 범행은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투입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부정한 방법으로 탈취하는 행위”라며 “건전한 경쟁과 거래 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국가 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 범죄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첨단기술의 범위에 속하는 기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삼성엔지니어링의 반도체 제조용 친환경(Non-Chemical) 초순수시스템 설계 및 시공 기술이 첨단기술로서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 구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나)목, 산업발전법 제5조의 ‘첨단기술의 범위에 속하는 기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반도체 제조용 Non-Chemical 초순수시스템 설계 및 시공 기술이 첨단기술(산업기술의 일종)에 해당할 수 있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