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생활권 안에서 못 살린다

2026-05-15 13:00:03 게재

분만·외상 원정이송 반복

소아과 기부금으로 운영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임신 29주 산모가 응급상황을 맞았지만 지역 안에서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부산까지 헬기로 이송됐다. 산모는 3시간 20여분 만에 병원에 도착해 응급분만을 했지만 결국 태아는 숨졌다. 이날 제주에서도 쌍둥이를 임신한 28주차 산모가 도내 병원을 찾지 못해 소방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까지 옮겨지는 일이 있었다.

지역 의료공백은 대도시에서도 반복된다. 지난 3월 25일 대구 동구에서는 임신 20주 산모가 복통을 호소해 119가 출동했지만 대구·경북 병원 16곳이 수용을 거부했고 결국 타지역으로 이송됐다. 분만실 포화, 산과 당직 부재, 응급수술 진행 등이 이유였다.

분만 공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전국 252개 시·군·구 가운데 분만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84곳으로 전체의 33.3%였다. 이들 지역 출생아는 2만4176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10.1%에 해당했다. 출생아 10명 중 1명꼴로 거주 지역에 분만 의료기관이 없어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셈이다. 응급환자 이송 지연도 늘고 있다. 수용 병원을 찾지 못해 병원 출발 전 현장에 60분 이상 머문 사례는 2023년 3만3933건에서 2025년 7만9455건으로 2.3배 증가했다.

필수의료 공백은 분만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손가락 절단 사고 뒤 접합수술을 받지 못해 서울 등 타지역으로 이송되는 사례도 반복됐다. 2025년 제주도 내 절단 사고 119 신고 134건 중 24건은 도내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실은 있어도 외상·수술 전문진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환자는 다시 생활권 밖으로 나가야 한다.

평상시 소아진료도 지역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일부 지방정부는 고향사랑기부금까지 활용해 소아청소년과 운영에 나섰다. 전남 영암군은 2004년 마지막 소아과가 문을 닫은 뒤 아이들이 목포·광주 등으로 원정 진료를 다녀야 했다. 군은 2024년 8월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열어 20년 만에 전문의 진료를 재개했다. 개원 1년 동안 2268명의 아이가 진료를 받았다.

전남 곡성군도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 소아청소년과 출장 진료를 시작한 뒤 상시 진료로 확대했다.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지정기부사업을 통해 진료 기반을 만들었고, 이후 ‘곡성에서 매일 만나는 소아과’로 운영을 넓혔다. 지방정부가 기부금까지 동원해 소아과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권 의료 공백이 정주 여건의 핵심 문제가 됐다는 방증이다.

지방선거에서 지역의료 공약은 단순한 병원 유치 경쟁을 넘어 생활권 필수의료 재건 계획으로 검증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분만·소아 진료를 어느 생활권 단위로 보장할 것인지, 의료인력과 운영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광역·기초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재정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핵심이다. 병원을 짓겠다는 약속보다 밤과 휴일, 응급상황에 실제로 진료가 가능한 체계를 만드는지가 관건이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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