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금리가 가를 미 증시의 승자와 패자
실적 있는 반도체·실물자산주 버티고…우주·양자 등 먼 미래 성장주는 시험대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다시 세계 금융시장의 기준점으로 떠올랐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5%를 넘어섰고, 10년물 금리도 4.6%대로 올라섰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가격은 떨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채권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주식 회사채 외환 원자재까지 사실상 모든 자산가격이 금리라는 하나의 잣대로 다시 계산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금리상승이 증시폭락의 전조인지, 아니면 인공지능(AI) 호황 속에서 감내할 수 있는 부담인지에 쏠리고 있다. 당장 시장붕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기업 실적은 아직 견조하고, AI 설비투자는 계속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는 여전히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금이 많다.
다만 장기금리가 5%를 웃도는 환경에서는 주식시장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성장주가 함께 오르는 장세보다 실제 이익과 현금흐름을 증명하는 기업만 살아남는 선별 장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주식의 가치평가 원리와 맞닿아 있다. 기업가치는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되돌려 계산한다. 이때 할인율이 올라가면 같은 미래 이익도 오늘의 가치로는 낮아진다.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가치평가 배수도 이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낮을 때는 먼 미래의 성장에 높은 값을 줄 수 있지만 금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나중에 벌 돈’보다 ‘지금 실제로 버는 돈’을 더 엄격하게 따진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기대도 약해지고 있다.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고 장기금리가 오르면 연준은 서둘러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특히 중동전쟁과 에너지가격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경우 연준에는 선택지가 줄어든다.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가 걱정이고, 금리를 유지하자니 금융시장 부담이 커진다.
채권발 증시 개편의 ‘신호탄’
덴마크 증권사 삭소의 차루 차나나 수석투자전략가는 “‘더 오래 높은 금리(higher for longer)’ 이야기가 돌아오고 있다”며 실제 인상이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시장의 초점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케이티 마틴 칼럼도 에너지 충격이 더 커질 경우 중앙은행이 높은 물가와 시장 충격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자금 흐름도 변수다.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2.73%까지 올라 1997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30년물 일본 국채 금리는 1999년 발행 이후 처음으로 4%에 도달했다. 일본 투자자들은 오랜 저금리 환경에서 미국 국채와 회사채를 대거 사 왔다. FT는 일본 투자자들이 약 1조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금리상승이 해외 자금의 본국 회귀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자금이 미국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오면 미국 장기금리에는 추가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 국채 수익률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일본 보험사와 연기금은 굳이 환위험을 감수하며 미국 장기채를 살 이유가 줄어든다. 영국 자산운용사 러퍼의 매트 스미스 펀드매니저도 시장 혼란, 특히 미국 신용시장에서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일본 투자자들이 자본을 본국으로 가져오며 엔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봤다.
‘반도체 랠리’ 아직 끝은 아니다
하지만 금리상승이 곧바로 주식시장 전체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어떤 주식이 버틸 수 있느냐”다. 첫 번째 후보는 반도체다. 높은 할인율은 먼 미래의 이익에 의존하는 적자 성장주에는 치명적이지만, 반도체처럼 현재 실적과 향후 이익 전망이 동시에 개선되는 업종에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 수요가 실제 매출로 이어진다면 높은 주가도 일부 정당화될 수 있다.
블룸버그의 슐리 런 칼럼니스트도 메모리 반도체 랠리가 아직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이른바 ‘나초(NACHO)’ 거래가 물가압력과 글로벌금리 상승, 달러강세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AI 주식 열풍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다. 다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반도체 지수가 올해 47% 오를 정도로 주가 부담이 커졌음에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랠리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물론 반도체도 무위험 자산은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마이클 하트넷 최고투자전략가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00일 이동평균선을 62% 웃돌고 있다며 과거 거품 국면과 비교되는 과열신호를 지적했다.
그러나 과열과 실적 개선은 구분해야 한다. 가격부담은 커졌지만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실제 주문과 이익으로 확인되는 기업은 단순한 테마주와 다르다. 금리 5% 시대에도 시장은 성장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질을 더 따질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현금흐름이 뚜렷한 ‘퀄리티’ 기업이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투자자는 부채가 많고 이익이 불안정한 기업보다 자기자본이익률이 높고 가격 결정력이 있으며 현금을 꾸준히 벌어들이는 기업을 선호한다. 단순히 매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기업보다, 매출 증가가 이익과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 기업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개별 종목뿐 아니라 퀄리티 ETF나 배당성장 ETF에도 적용된다. 단순 고배당주는 5% 국채와 경쟁해야 하지만, 배당을 꾸준히 늘릴 수 있는 기업은 방어력을 가질 수 있다.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실물자산
세번째는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실물자산 기업이다. 이런 흐름을 겨냥한 상품으로 라운드힐 HALO ETF(LOHA)가 있다. HALO는 ‘무거운 실물자산, 낮은 진부화 위험’을 뜻한다. 라운드힐에 따르면 LOHA는 에너지인프라 기계 운송 광산처럼 대규모 물리적 자산과 필수 수요를 기반으로 한 기업에 투자한다. 이 ETF는 100개 종목을 동일가중 방식으로 담고, 보수는 연 0.35%다. 14일 상장된 신생 상품이라 운용 성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LOHA 같은 상품의 등장은 금리와 AI가 동시에 만든 투자 환경 변화를 보여준다. 금리가 낮을 때는 먼 미래의 성장 기대만으로도 주가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금리가 5%를 넘어서면 투자자는 지금 벌어들이는 현금흐름과 대체하기 어려운 자산을 더 따진다. AI가 소프트웨어 업무를 바꾸더라도 트럭 철도 광산 전력망 냉난방 장비 같은 물리적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기 어렵다. 다만 실물자산 기업도 금리상승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과 경기 둔화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반대로 우주산업, 양자컴퓨팅, 일부 초기 AI 기업처럼 아직 이익이 거의 없거나 먼 미래의 상업화 기대에 주가가 좌우되는 기업은 더 취약하다. 이런 기업의 가치는 대부분 ‘언젠가 벌 돈’에 달려 있다. 금리가 낮을 때 그 언젠가가 멀어도 시장이 기다려 줄 수 있다. 그러나 10년물 국채가 4.6%를 넘고 30년물이 5%를 웃도는 환경에서는 기다림의 비용이 커진다. 투자자는 더 높은 확률, 더 빠른 현금흐름, 더 낮은 부채 부담을 요구하게 된다.
누가 돈 버는지 선별하는 시간 가까워져
골드만삭스의 리치 프리보로츠키 원델타 데스크 대표는 시장의 핵심 싸움이 ‘채권 대 AI 호황’으로 압축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재정적자가 큰 상황에서 AI 설비투자 붐과 유가 충격이 겹치면 금리가 다시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채권이 매도될 때 주식시장이 이를 잘 소화하는 경우는 드물며 채권시장 변동성이 지속되면 위험회피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5% 장기금리는 증시 전체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신호라기보다 주식시장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기준선에 가깝다. 반도체처럼 실적이 따라오는 성장주, 현금흐름이 뚜렷한 퀄리티 기업,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실물자산 기업은 여전히 투자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매출보다 꿈이 크고, 이익보다 이야기가 앞섰던 종목들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처럼 물이 빠지고 나서야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드러난다. 5% 장기금리는 그 물을 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물이 빠진다고 모든 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실적과 현금흐름을 갖춘 기업은 오히려 더 돋보일 수 있다.
고금리 시대의 증시는 폭락과 상승의 이분법보다, 누가 실제 돈을 벌고 누가 기대만으로 버텼는지를 가르는 선별의 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