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손자병법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 본질과 퇴직연금 패러다임 전환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은 단순한 임금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구조 전체에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최근 수만명의 노동조합원들이 거리로 나와 성과급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은 복잡하다. 한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경쟁력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연구개발 투자 축소와 기업 경쟁력 약화,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수많은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시에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은 단순한 노사 대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적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성과급 넘어 ‘초과수익 공유’로
이제 우리 사회는 ‘성과급’이라는 단기 보상 중심의 사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성과급은 순간적인 만족은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노후 안정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초과수익 공유’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기업이 예상한 평균 수익을 초과해 발생한 이익에 대해 노사와 주주 경영진이 사전에 배분 원칙을 합의하는 방식이다.
먼저 기업의 재투자와 주주환원 기준을 정하고 이후 초과적으로 발생한 수익 일부를 노동자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에 가깝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한민국 퇴직연금 시장이다. 현재 확정급여형(DB)을 중심으로 300조원이 넘는 자금이 쌓여 있다. 퇴직연금은 법적으로도 ‘후불적 임금’이라는 대법원 판례의 원칙 위에 존재한다. 즉 노동자가 당장 지급받지 않고 미래 노후를 위해 적립해 놓은 임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이 거대한 자산은 대부분 사용자가 외부 금융기관에 위탁 운용해 왔다. 정작 가입자인 노동자들은 운용 과정과 수익 구조에서 사실상 소외돼 왔다.
퇴직연금, 사용자 중심에서 가입자 중심으로
최근 노동현장에서는 “왜 노동자의 미래 임금인 퇴직연금을 사용자만 운용 주체가 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급진적인 주장처럼 들렸을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노동자들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투자환경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으며 퇴직연금 수익률이 자신의 노후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는 사실도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단기 성과급보다 장기적인 퇴직연금 자산 증식이 훨씬 중요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노동부가 밝힌 ‘가입자 이익 최우선의 수탁자 책임 확립’ 원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퇴직연금의 중심축이 사용자 중심의 수동적 구조에서 가입자 중심의 능동적 체계로 이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퇴직연금 규약을 노사 합의로 개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초과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일부를 가입자들에게 환원하는 구조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노사갈등 줄이고 ESG 경쟁력 높여야
이 방식은 단순히 노동자에게 돈을 더 주자는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기관들에 더욱 강한 경쟁과 책임을 요구하는 구조다. 실물이전제도와 결합될 경우 금융기관들은 연줄이나 관행이 아니라 오직 수익률과 운용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과 비본질적 거래는 줄어들고, 가입자 수익 극대화라는 본질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얻는 것이 적지 않다. 초과수익 공유 구조는 노사 갈등을 줄이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사회(S) 영역에서는 노동조건 개선과 상생협력이 강화되고, 지배구조(G) 영역에서는 투명성과 주주가치 보호가 높아질 수 있다. 노동자들은 단순 투쟁보다 장기 자산 형성과 기업 성장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기업은 연구개발과 미래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은 단순한 임금분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퇴직연금 구조와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어야 한다. 성과급 중심의 일회성 만족을 넘어 초과수익 공유를 통한 장기 자산 형성과 노후 안정의 길로 나아갈 때다. 노동자와 기업, 주주와 사회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새로운 한국형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바로 지금일 수 있다.
이영하
연금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