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일자리, AI 중심으로 급속 재편
빅4 회계법인, 감사보다 AI인재 더 뽑아
JP모건·스탠다드차타드 등도 감원계획
인공지능(AI)이 사무직 일자리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공장 자동화가 생산직을 흔들던 과거와 달리 이번 변화는 회계사 은행원 인사·위험관리 담당자 같은 화이트칼라 직종을 직접 겨냥한다.
단순 반복 업무를 맡던 채용은 줄고, AI를 업무에 적용하거나 자동화 도구를 설계하는 전문인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감사·세무·준법감시처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 19일 보도에 따르면 세계 4대 회계법인인 딜로이트·EY·KPMG·PwC가 2025년 영어권 국가에서 낸 채용 공고 가운데 AI 기술을 요구한 비중은 7%에 육박했다. 챗GPT가 출시된 2022년 2% 미만에서 3배 이상 늘었다. 반면 전통적 감사 직무 채용 공고 비중은 2025년 3%를 밑돌았다. FT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에서 나온 공개 채용 공고 5만건 이상을 분석했다.
AI 관련 채용은 단순 전산직 충원이 아니다. 생성형 AI 엔지니어, 머신러닝 전문가, AI 에이전트로 업무를 자동화하는 인력이 포함됐다. 2025년 AI 관련 직무의 약 4/5는 코딩 능력을 요구했다.
KPMG는 챗봇 프롬프트 설계 경험자를 찾았고, EY는 세무 업무에 생성형 AI를 적용할 인력을 채용했다. 회계사가 장부를 직접 확인하는 시대를 넘어 AI가 자료를 먼저 분석하고 사람이 결과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업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블룸버그 21일 보도에 따르면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JP모건 중국 서밋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러가지 새로운 직무가 생기겠지만 우리는 특정 부문에서 AI 인력을 더 뽑고 은행원은 덜 뽑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가 기존 은행원의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남은 직원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이먼 CEO는 대규모 해고보다 자연감소를 통해 전환을 관리할 수 있다고 봤다. JP모건은 연간 이직률이 약 10%로 매년 2만5000~3만명이 회사를 떠난다. 이 여지를 활용해 직원을 재교육하거나 다른 부서로 옮기고, 필요할 경우 조기퇴직 제도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변화가 너무 빠르면 부정적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그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날 경우를 사회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은행 스탠다드차타드는 더 직접적인 계획을 내놨다. FT에 따르면 스탠다드차타드는 2030년까지 후선 업무 인력을 15% 이상 줄이기로 했다. 감축규모는 8000명에 육박한다. 대상은 인사 위험관리 준법감시 등 지원 기능이며 인도 벵갈루루, 중국 선전, 폴란드 바르샤바의 거점도 포함된다.
빌 윈터스 스탠다드차타드 CEO는 “비용절감이 아니다”라며 “일부 경우 낮은 가치의 인적자본을 우리가 투입하는 금융자본과 투자자본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망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다. 블룸버그는 컨설팅회사 맥킨지 추산을 인용해 금융·보험업 노동시간의 약 30%가 2030년까지 자동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씨티그룹 연구에 따르면 은행 일자리의 절반 이상은 기술로 대체되거나 보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FT도 모건스탠리 전망을 인용해 유럽 은행권에서 앞으로 5년 동안 2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AI 도입과 온라인 전환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변화의 핵심은 사무직이 사라지느냐보다 어떤 사무직이 남느냐다. 회계사와 은행원이라는 직함은 남더라도 업무 내용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장표를 만들고 자료를 대조하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AI가 뽑아낸 결과를 해석하고 오류를 걸러내며 고객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도 회계·금융 지식만 갖춘 사람에서 AI 도구를 다룰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화이트칼라 일자리도 AI를 쓰는 일과 AI가 대신할 일로 나뉘기 시작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