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탱크데이’가 남긴 질문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그날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텀블러 제품명이 ‘탱크’였고, 홍보문구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까지 담았다. 탱크는 광주시민을 진압한 정치군부의 상징이고, ‘책상에 탁’은 1987년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덮으려는 당시 경찰의 거짓말에서 따 왔다.
회사측은 “우연”이라 했지만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아니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정 회장은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 높이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나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왜 그럴까?
문제는 내부시스템도 관리체계도 아니다. 정용진 회장이다. 정 회장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맥락으로 각인되어 있느냐이다. 정 회장은 2022년에는 SNS에 ‘멸공(滅共)’ 즉 공산당을 없애자는 단어를 반복해서 게시해 거센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2023년에는 극우성향의 기독교 행사 ‘빌드업 코리아’에 축하영상을 보냈다. 2025년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특정 정치집회에 후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전력 위에 탱크데이가 겹치면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정 회장은 좀더 깊은 성찰 앞에 마주 서야 한다. 기업총수의 정치적 신념 표출, 그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그 개인이 수십조원의 자산을 가지고 수만명을 고용한 대기업 총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대 규모의 자본이 특정 이념과 결합할 때 그것은 단순한 개인 의견의 표명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담론지형을 흔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커피 한잔 할 때 총수의 이념과 마주친다면
마틴 길렌스(Martin Gilens)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정치와 경제 관계에서 미국의 현실을 분석했다. 그는 연구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선호는 정책 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반면 경제엘리트의 선호는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결론지었다. 경제가 정치와 국가공동체의 담론형성에 개입하는 순간 공동체를 위한 책임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거대자본이 이념논쟁에 뛰어들 때 자본의 힘이 정치적 의사 결정의 무게중심을 기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과 정치의 결합이 심화될수록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빈껍데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소비자는 상품을 사지 이념을 사지 않는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바쁜 일상에서 놓여나 위로를 찾는 사람이 갑자기 대기업 총수의 정치적 신념과 마주쳐야 한다면 그것은 소비자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다. 그 신념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예민한 5.18 상처를 건드렸다면 더욱 그렇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 내부의 문화, 그 문화를 형성하는 총수의 가치관이다. 총수의 이념적 편향이 조직문화에 스며들어 역사적 감수성을 마비시킨 결과다. 기업총수의 정치적 이념이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불쏘시개가 된 셈이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시민단체들이 정 회장을 고발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라고 직접 비판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마케팅 실수로 끝낼 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거대 경제자본이 정치적 이념과 결합할 때 그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에 있다.
자본이 정치에 개입하면 그 힘은 단순한 시장지배를 넘어선다.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의 가치기준을 흔드는 위기를 만든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민주주의는 거대 자본의 의지에 따라 어떻게 굴절될지 그 위기를 가늠할 수 없다.
자본의 일탈은 민주주의의 한계와 내부모순을 이용해 결국 자본주의 존립을 위협한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그 모순 중 하나가 바로 ‘자본의 자기과잉’이라고 했다. 이윤을 향한 폭주, 정치이념과의 결탁. 이것이 방치될 때 시장도 민주주의도 위기에 빠진다.
거대자본과 이념 경계 감시할 장치 필요
우리는 이미 수십년간 정경유착의 폐해를 경험하고 목격했다. 그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본은 정치가 아니다. 자본은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총수의 이념이 브랜드 위에 올라타는 순간 더이상 중립적인 상품이 아니라 이념전쟁의 도구로 전락한다.
정용진 회장이 국민에 사과하고 진상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이 없다. 그래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답은 간단하다. 자본은 정치의 언어를 멈춰야 한다. 기업총수가 개인의 신념을 기업의 브랜드와 마케팅을 통해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공공의 문제가 된다.
탱크데이, 이 사건이 던진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거대자본과 정치이념의 경계를 지킬 사회적 감시와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커피 한잔이 전장이 되는 사회는 모두 패자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