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안전보건 패러다임전환

안전보건비용 노동자 전가, 산업차원 재원 마련해야

2026-05-29 13:00:39 게재

현장 접근만으론 건설 ‘이동 노동자’ 보호에 한계 … 소규모현장에서 극단적 표출, ‘초기업단위 접근’ 필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지난 7일 50인 이하 사업장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소규모 사업장 산재예방 실효성 제고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은 “일하는 장소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불합리한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 ‘불합리한 구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소규모 건설현장(여기선 20억원 미만을 대상)이다. 최근 10여년간 전산업의 사고사망만인율은 감소 추세인 반면 건설업의 경우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 증가세를 소규모 건설현장이 주도하고 있다.

2019~2023년 5년간 평균 소규모 건설현장의 노동자 비중은 31.5%인데 비해 재해자수 비중은 61.2%, 사고사망자수 비중은 56.9%를 차지한다.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사고자 수)은 건설업 전체 평균이 1.73인데 비해 소규모 건설현장의 경우 3.25로 매우 높다. 따라서 건설업 산재를 예방하려면 반드시 소규모 건설현장의 재해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소규모 현장의 수가 32만여개(전체의 88% 해당)에 달해 현행 현장단위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나아가 마땅히 건설사업주가 공사비에 계상된 산업안전보건비(산안비)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약자인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부당한 구조까지 만연해 있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가 절박한 노동자가 취업에 필요한 건설업기초안전보건교육과 배치전 건강진단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것 또한 이동하는 노동자에 대한 현장단위 접근에서 야기한 구조적 사각지대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건설노동자의 ‘이동성’을 고려한 구조적 해법으로서 ‘초기업단위’ 접근을 모색해 본다

보호구 착용 미흡, 아슬아슬한 건설현장 고소작업임에도 안전대와 안전모도 없이 일하고 있다. 소규모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bryan79c/80129832888

#. 직업소개소 대표는 “건설업체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서 지불해야 할 기초안전보건교육비가 약자인 노동자에게 전가된 지 오래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소규모현장에선 6개월마다 받아야 하는 배치전 건강진단 비용마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30여년간 여러 현장을 경험한 건설노동자는 “대규모현장에서는 안전대나 안전화를 여러 번 받기도 하지만, 소규모현장에서는 값싼 안전모만 줄 뿐 비싼 안전화나 안전대는 주지 않아 아찔한 경우가 많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안전보호구협회 분과위원은 “대규모현장에서의 중복과 소규모현장에서의 누락 없이 보호구를 노동자에게 주기적으로 고루 지급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보호구를 더 적은 총액으로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도 건설재해는 여전히 많다. 다단계 하도급 및 공사비 삭감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노동자가 이동하는 ‘현실’과 고정된 현장단위 ‘제도’ 간의 불일치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자는 임금 하한선 규제인 적정임금제로, 후자는 이동성을 고려한 초기업단위 접근으로 대응할 수 있다. 여기선 후자에 집중해보자.

◆노동자는 이동, 비용은 현장단위? 구조적 문제 = ‘현실과 제도 간 괴리’는 다양한 폐해를 낳는다. 첫째,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사업주는 무임승차할 수 있다(수익자≠부담자). 공사비에는 산재예방에 쓰여야 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산안비)가 계상돼 있고 사업주는 용도에 맞게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미 건설업기초안전교육(약 4만원, 진입 시 1회)을 이수했거나 배치전 건강진단(약 8만원, 고용시점 6개월 이내)을 받은 노동자를 고용하려 한다. 산안비와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업주의 선택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절박한 노동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주 대신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산안비가 적은 20억원 미만의 소규모현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안전대와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아 그 비용도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동 노동자에겐 ‘저가 보호구’가 지급되기도 한다. 계속 바뀌는 단기 고용 노동자에게 견고한 고가의 보호구를 지급할 경우 사업주는 산안비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정규직에게는 10만원대의 안전대와 안전화를 지급하고 비정규직에게는 4만원대를 지급한 사례가 있다.(2025년 국정감사).

셋째, ‘중복과 누락’의 비효율이 야기된다. 산안비와 안전관리자가 많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규모현장에서는 양질의 보호구도 중복해서 지급받을 수 있다. 반면에 소규모현장에서는 저가 보호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현장에 산재가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째, 개별 현장에선 소수인 여성노동자는 ‘맞지 않는’ 남성용 보호구를 지급받는다. 2026년 3월 기준 전체 기능인력 중 여성은 약 6만명으로 적지 않으나 개별 현장 차원에서의 비중은 4.5%에 불과해 여성용 보호구를 따로 구비하지 않는다.

현실과 제도 간 괴리에서 초래된 구조적 문제점은 소규모현장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소규모에서 극단적 표출, 보호에 한계 = 위험이 높은 소규모현장에는 거의 모든 산업안전보건 요소가 결여돼 있다. 안전보건관리자나 조직이 없고 산안비도 적다. 추락방지 시설, 스마트안전장비도 미흡하다. 떨어짐 산재의 발생빈도가 높으나 이를 막아줄 안전대는 상대적으로 비싸 지급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교육 역시 형식적이거나 없다. 공사기간도 3~6개월 이내로 짧아 공사현장 발굴과 적기에 필요한 지원도 곤란하며 노동자의 고용기간도 짧아 사업주는 보호구 지급을 더욱 기피한다.

나아가 대규모현장에서 거부당한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안전보건 관리능력이 취약한 소규모현장으로 몰린다. 외국인은 많으나 통역자나 AI 등을 활용한 의사소통 방법도 거의 없다.

최악의 특성은 현장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소규모현장은 평균 32만여개(전체의 88% 해당)에 달해 모든 현장을 쫓아다니기엔 행정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안전지킴이를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구조적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요컨대 안전보건관리능력이 취약한 소규모현장이 너무 많아 ‘현장단위 접근’만으론 한계가 있다.

◆공통요소 비용은 ‘산업차원’ 부담 타당 = 핵심은 비용 부담 방식이다. 노동자의 이동성을 고려해 비용 부담 주체를 개별 현장으로부터 초기업단위 또는 산업차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설산업의 안전보건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반으로서 개별 현장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다.

필요한 비용은 산업차원의 가칭 ‘건설안전보건기금’(건설안전기금)으로 충당하는데 개별공사의 산안비 중 일정 비율을 건설근로자공제회가 퇴직공제부금과 함께 징수한다. 이것을 활용해 어느 현장에서나 필요한 기초공통안전보건요소(기초안전보건교육, 배치전 건강진단, 3대 보호구 등, 직종 특성 고려)를 개인별로 작업일수에 따라 주기적으로 지급하도록 한다. 항목별 시행 순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사업주는 비용을 납부함으로써 해당 항목을 현장에서 지급할 의무는 없어지지만 고용할 때 반드시 지급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관리해야 한다.

개인별 작업일수 관리는 퇴직공제 데이터베이스(DB)와 고용보험DB를 종합해 활용하고, 주기적 지급 이력은 퇴직공제 전자카드에 기록한다. 예컨대 노동자 입직 시 기초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한 지정 교육기관이 그 사실을 전자카드에 입력하고 기금에 신청해 교육비를 지급받는다.

6개월 또는 매년 배치전 건강진단을 실시한 지정 병·의원은 그 사실을 전자카드에 입력하고 건설안전기금으로부터 비용을 지급받는다. 안전모·안전화·안전대 등 3대 보호구를 개인별로 일정한 작업일수, 예를 들어 순서대로 매 90일, 120일, 150일 마다 노동자에게 무상 쿠폰을 송부해 기존 보호구를 새 것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그 사실을 전자카드에 입력하고 건설안전기금에서 지불한다.

각 작업일수마다 중간에 분실할 경우 노동자에게 해당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 부정수급을 막는다. 개인별로 일정 작업일수마다 3대 보호구의 지급을 통보하는 역할은 노동자의 작업일수 정보를 보유하고 전자카드를 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제격이다.

◆‘노동자에게 비용 전가’ 폐해 극복 가능 = 초기업단위 접근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비용 전가를 극복할 수 있다. 첫째, 건설안전기금에서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사업주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소(수익자=부담자)하고 약자에 대한 비용 전가도 막을 수 있다. 둘째, 개인별로 인증된 품질의 보호구를 지급하면 ‘중복’을 막아 건설산업 전체의 총비용은 줄일 수 있고 ‘누락’을 막아 소규모현장의 사각지대도 해소할 수 있다. 진입구인 기초안전보건교육 단계에서 공통요소를 갖추게 한 후 이수증을 발급하면 노동자는 어느 곳을 가든 그 요소를 장착한 채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개인별로 작업일수마다 새롭게 갱신하면 된다.

셋째, 건설산업 전체로는 6만명의 여성노동자 보호구 시장이 형성되므로 여성용 맞춤 보호구를 생산·구매·공급할 수 있다. 넷째, 건설안전기금에서 지원하면 소규모현장에서도 고가의 스마트안전장비, 외국어 통역자, AI 장비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이동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안전보건 역시 노동자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이동하는 범위가 여러 현장이라면 현장단위가 아닌 건설산업 차원의 접근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어느 현장에서든 모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약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부당함을 더 이상 묵인해선 안 된다.

심규범

현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

건설근로자공제회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