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환경과학 이야기
환경DNA 넘어 환경RNA 시대 열리나
한국환경유전자학회, 원헬스 연계
미래 감염병 조기경보 활용 가능성
자신도 모르게 물속에 흔적을 남긴다면? 그 흔적으로 생물다양성을 평가할 수 있다면? 환경(e)DNA 얘기다. 물은 물론 대기까지 영역을 확대하던 eDNA가 이제는 환경(e)RNA로 기술 진보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eDNA가 유기체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면 eRNA는 활동 중인 생물 군집의 대사 상태를 반영할 수 있다.
1일 한국환경유전자학회의 ‘환경 DNA(eDNA) 기반 유전적 다양성 모니터링 정책 백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 대응 전략’에 따르면, 초기 eDNA 연구는 특정 생물종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eDNA와 eRNA를 함께 활용해 생물군집의 유전적 구성뿐 아니라 실제 생리적 활성 상태와 스트레스 반응을 동시에 분석하려는 시도가 확대 중이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분석과 집단유전체학을 결합해 기후변화로 어느 지역 생물 집단이 먼저 위기에 처할지 유전자 수준에서 미리 예측하는 연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집단유전체학은 한종의 여러 개체군(지역 집단)에서 유전체 전체를 비교 분석하는 학문이다.
DNA에는 생물 유전정보가 담겨있다. 생물이 죽거나 배설물·점액 등을 남기면 환경에 DNA가 흘러나오고 이를 통해 어떤 종이 서식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eDNA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생물이 살아서 활동 중인지 혹은 환경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이다.
RNA는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할 때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RNA는 DNA보다 훨씬 빠르게 분해되는 불안정성이 있지만 유기체의 대사 활동을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해당 생물이 살아서 대사 활동 중이라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eRNA는 아직 eDNA에 비해 표준 분석 프로토콜이 덜 정립돼 있고 현장 적용을 위한 기술 장벽도 높다.
그럼에도 eRNA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실험적 증거는 축적 중이다. 국제 학술지 ‘분자생태학(Molecular Ecology)’의 논문 ‘열 스트레스 하의 환경 전사체학: 환경 RNA는 수생 생물의 유전자 발현 변화를 밝힐 수 있는가’에 따르면, 물속에 남은 eRNA만으로도 생물이 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유전자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단순히 특정 종의 유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물속에 떠다니는 eRNA로 열 스트레스를 받은 생물의 반응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조 안 물벼룩을 모두 건져낸 뒤 물만 남겨 분석했다. 수조 온도를 대조군(20℃)과 고온 스트레스 조건(28℃)으로 나눠 7일간 유지한 결과, 물속 eRNA에서 열 스트레스에 반응한 유전자 변화가 실제로 포착됐다. 생물 조직을 직접 떼어내 분석했을 때와 97%가 일치했다. 물벼룩뿐 아니라 수조 안 다른 생물 8종에서도 스트레스 반응이 동시에 확인됐다. 생물을 건드리지 않고 물만 퍼서 생태계 전체의 건강 상태를 한번에 들여다본 셈이다.
이러한 특성은 감염병 감시 분야로도 주목받는다. 한국환경유전자학회의 백서에서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하수 기반 역학조사와 eDNA와 eRNA 기반 감염병 모니터링 기술의 정책적 중요성이 크게 증가했다”며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는 공동 원헬스 프레임워크를 통해 △야생동물 △가축 △환경 시료를 통합하는 생물감시 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며 eDNA·eRNA 기술은 미래 감염병 조기경보 체계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헬스는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사람의 건강을 지키려면 동물과 생태계 건강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오는 인수공통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기술 진화의 배경에는 국제 정책 변화도 있다. 2022년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단순 종 수 중심의 보전 정책에서 벗어나 △유효개체군 크기(Ne·실제 번식에 기여하는 개체 수) △유전적 연결성 등 개체군 수준의 유전적 회복력을 국가 평가 지표로 명시했다. ‘생물이 몇 종이냐’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느냐’도 중요한 확인 사항이 된 것이다. eDNA·eRNA 기술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떠오르는 중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