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동시간 제한없는 재량노동제 확대 노사 대립
재계, 현행 전문직종 이외 서비스 업무까지 확대 요구
노동계, 장시간 노동 우려 반대 … 다카이치, 검토 지시
일본에서 노동시간 제한을 덜 받는 재량노동제를 둘러싼 노사정 이견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말 성장전략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본격화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시 회의에서 현장 실태를 점검하고, 노사 양측의 입장을 반영해 논의를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의에서 “근로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자발적인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근무방식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취임 때부터 “더 긴 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 제도의 확대를 둘러싸고 노사간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성장전략회의 산하에 설치된 노동시장개혁 분과회의에서도 노사 양측의 의견은 엇갈렸다. 지난달 13일에도 노사 양측이 관련한 입장을 내놨지만 차이가 컸다. 사용자단체를 대표하는 경단련은 적용 대상 업무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와 수당 제도의 정비를 강조했다. 제도 확대를 반대하는 노동계를 의식했다는 풀이다.
노동시간과 관련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근로자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건강권 확보도 고려했다는 평가다. 임금과 관련해 회사가 제도 적용 이전의 평균적인 시간외 근무수당을 바탕으로 ‘재량노동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경단련은 재량노동제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량노동제는 일본 노동법제에 따라 실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노사가 합의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업무의 성질상 일하는 수단이나 방법, 시간 배분 등을 노동자 재량에 맡길 필요가 있는 업무에 적용한다. 이 경우 회사측은 시간외근무 수당의 지급 등이 면제된다.
다만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노동시간 운용 등에 대한 노사간 합의와 대상 근로자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경단련은 건강권 확보 대책 마련을 전제로 과반수 근로자로 구성된 노조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용대상 업무를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행 재량노동제는 △전문업무형 △기획업무형 두 분류가 있다. 전문업무형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시스템 컨설턴트 △신문 및 방송사 기자 등 20개 직종이 포함된다. 기획업무형은 기업 안에서 기획과 조사, 분석 업무 등에 종사하는 경우이다. 경단련은 여기에 특정한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입안하고, 고객 제안 및 협의를 수행하는 업무 등도 추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이 제도의 확대로 장시간 노동을 초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요시노 도모코 렌고 회장은 지난달 노동절 중앙대회에서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근거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면서 “재량노동제의 확대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후지와라 기요아키 경단련 전무는 “적절히 운영하면 노동자에게 매우 만족도가 높은 근무방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27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16.2%가 ‘노동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실제로 재량노동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문업무형(1.1%)과 기획업무형(0.3%) 모두 극소수에 그쳤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