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자영업자 부채위험 커진다
60대 이상 대출 406조 … 전 연령대 중 유일한 증가세
채무불이행 대출액 20% 급증 … 생계형 창업 흔들
고령 자영업자의 부채 위험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전 연령대 가운데 60대 이상만 대출 규모가 늘었고, 채무불이행자 수와 채무불이행 대출액도 유일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이후 생계 유지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든 고령층이 내수 부진과 금리 상승의 이중 부담에 노출되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나이스평가정보가 국회 정무위원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개인사업자 채무불이행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332만9143명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1138조972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0.5%(5조8252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금융기관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채무불이행자는 16만920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5.1%(8655명) 감소했다. 반면 이들이 보유한 대출액은 37조8021억원으로 7.7%(2조7178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체자 줄었지만 부실 부담은 확대 = 채무불이행자 수는 감소했지만 관련 대출액은 늘었다. 부실이 일부 차주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 금리가 상승세를 보인 데다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의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 말 연 2.953%에서 이달 8일 연 3.940%까지 상승했다.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보다 3.6% 감소했고 서비스업 생산도 1.0% 줄었다.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은 선방하고 있지만 내수 부문은 부진한 K자형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금리 상승기까지 겹치면 차주들의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60대 이상만 대출 늘고 부실도 증가 = 연령별로 보면 고령층의 부담이 유독 두드러졌다.
올해 4월 말 기준 60대 이상 개인사업자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406조754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9조8655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이하와 30대, 40대, 50대의 대출잔액은 모두 감소했다.
채무불이행자 수도 60대 이상에서만 늘었다. 지난해 말 3만8739명이던 60대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올해 4월 말 3만8999명으로 0.7% 증가했다. 이들이 보유한 채무불이행 대출액은 9조9291억원에서 11조8645억원으로 19.5% 급증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영업의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5년 142만명에서 지난해 210만명으로 늘었고, 2032년에는 248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60세 이상 비중도 지난해 37.1%까지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대규모 은퇴가 이어지면서 고령 자영업자 증가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후 생계형 창업의 한계 = 전문가들은 고령층 부실 증가가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라 노후소득 구조와 노동시장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 자영업자의 65.7%는 운수창고업·숙박음식업·도소매업·건설업 등 취약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60대 신규 자영업자의 평균 창업 준비 기간은 9개월로 다른 연령층보다 짧았고, 생산성을 보여주는 1인당 매출액도 3000만원 수준에 그쳤다.
보고서는 고령 자영업자들이 창업 준비가 부족하고 생산성은 낮은 반면 부채비율은 높은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령 자영업자의 급증이 개인 차원을 넘어 금융안정과 경제성장 측면에서도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위험 넘어 금융권 부담으로 = 고령 자영업자의 부실 위험이 우려되는 이유는 폐업 이후 재기가 쉽지 않은 데다 금융권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60대 자영업자가 사업을 접은 뒤 상용직으로 재취업하기보다 임시·일용직으로 이동하거나 노동시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고령 자영업자의 부실 증가는 단순한 연체 문제를 넘어 경제적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현재 고령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차주 수와 대출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취약차주 비중과 비은행권 대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부동산업 비중도 커 향후 금융권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속고용 확대가 근본 대책 = 전문가들은 단순한 금융 지원이나 채무조정만으로는 고령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고령층이 은퇴 후 자영업으로 몰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계속고용 확대와 퇴직 후 재고용 활성화,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인영 의원은 “고령 자영업자의 채무불이행 증가세는 우리 경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며 “고령층이 부채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금융 지원뿐 아니라 재기 지원과 사회안전망을 연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고령 자영업 문제를 단순한 자영업 정책이 아닌 고령화와 노동시장, 노후소득 체계 전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