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읽고 다루는 AI
“인공지능,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데 사용해야"
정신건강 진단·예측에서 치료 지원까지 … “정신건강 의사 역할은 사라지지 않고 달라진다”
인공지능(AI)이 정신건강 영역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불안장애와 우울증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는 기술에서부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관리, 생성형 AI 기반 인지행동치료(CBT) 지원에 이르기까지 AI의 활용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관련해서 12일 서울 서대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026 대한불안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세션2 ‘불안을 읽는 AI, 불안을 다루는 AI의 기회와 과제’에서는 AI가 정신건강 분야에 가져올 혁신과 함께 인간 전문가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책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불안을 읽는 AI’의 시대를 넘어 ‘불안을 다루는 AI’의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AI와 인간 전문가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파트너로 진화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승환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에 따르면 최근 AI는 인간의 정신건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를 발견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위험을 예측하며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발전은 분명 정신건강 관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이사장은 “미래 정신건강 관리의 핵심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이른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며 “AI는 인간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기술이 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불안을 읽는 AI”… 디지털 흔적에서 위험을 예측 =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박성규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데이터 기반 불안 평가와 위험 예측의 최신 지견’을 통해 AI가 개인의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해 정신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기술 발전상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 기록, 온라인 대화, 수면 패턴 등 일상 속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디지털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불안과 우울 위험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연구는 단순히 결과를 예측하는 ‘블랙박스 AI’를 넘어 어떤 이유로 특정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해석 가능한 AI(Interpretable AI)’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교수는 발표에서 “정신질환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어떤 근거로 위험을 판단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공공보건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연구에서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신경기호학(Neuro-symbolic) 기법을 결합해 불안과 우울을 분류하고, 그 판단 근거를 규칙 형태로 제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는 향후 정신건강 평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 교수는 또한 수면 데이터와 같은 시계열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정신건강 악화를 조기에 탐지하는 연구도 소개했다. 불안 증상이 본격화되기 전에 위험 신호를 포착해 예방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AI 기반 정신건강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AI가 상담까지 한다면…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 이태영 경북대 의대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AI가 심리치료 영역까지 진입하는 시대에 정신과 의사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이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AI 챗봇 사용자들이 실제 대면 심리치료와 유사한 수준의 치료적 동맹(therapeutic alliance)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인간만이 형성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치료 관계가 AI와의 상호작용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향후 5~10년 동안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AI가 수집한 디지털 신호의 해석자 △AI 치료기기의 처방자 및 감독자 △오류와 위험을 통제하는 안전장치 △법적 책임 주체로 규정했다.
더 나아가 이 교수는 언어와 상담 중심의 심리치료 영역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실제로 전이(transference), 정신화(mentalization), 상실에 대한 애도 등 정신분석학적 현상이 인간과 AI 관계에서도 관찰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 전문가의 책임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경조절치료나 중재적 정신의학 같은 신체적 치료 영역, 규제와 표준을 만드는 제도적 영역, 그리고 최종 책임을 지는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래 정신과 의사의 가치는 더 잘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최종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재정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PTSD 관리의 디지털 전환…AI가 재난 심리지원을 연결 = 오승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PTSD에서 AI 기반 평가와 개인화 개입 전략’을 소개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대형 산불, 항공기 사고, 사회적 참사 등 대규모 재난이 반복되면서 재난 경험자의 정신건강 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오 연구원은 기존 재난심리지원 서비스가 전문인력 부족, 지속적인 추적관리 한계, 서비스 접근성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ETRI는 AI 기반 재난심리복지지원 플랫폼을 구축해 재난 경험자의 심리 상태를 평가하고 적합한 전문가와 연결하며, 장기 추적관리까지 지원하는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플랫폼은 영상과 음성, 텍스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멀티모달 AI를 적용해 PTSD 위험을 평가한다. 또한 전문가 자동 매칭 기술을 활용해 상담 수요자와 적합한 상담사를 연결하고, 상담 과정 전반을 디지털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실증 결과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확인됐다. 사용자들은 플랫폼의 화상상담, 디지털휴먼, 정보 제공 기능 등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으며, 재난심리지원 서비스 접근성과 효율성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 연구원은 “AI는 상담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심리지원 업무를 효율화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적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와 인지행동치료…참여도 높여 = 최수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생성형 AI가 불안장애 인지행동치료를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최근 디지털 치료제 연구에서 동일한 임상 콘텐츠라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경우 환자의 참여도와 치료 지속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성인 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AI 기반 치료군이 일반 디지털 워크북 사용자보다 앱 사용 시간은 3.8배, 접속 빈도는 2.4배 높게 나타났다. 치료 효과 자체는 두 그룹 모두 개선됐지만, AI가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에서 뚜렷한 강점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AI 기반 개입을 받은 환자들이 치료 세션 참여 횟수가 증가하고, 예약 취소율과 중도 탈락률은 감소했다. 임상 회복과 안정적 회복률 역시 대조군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결과가 보고됐다.
최 교수는 특히 “치료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깊이”라고 강조했다. 생성형 AI는 환자의 반응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개인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디지털 치료제가 갖기 어려웠던 치료적 관계 형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의 기회와 과제 사이 = 이번 학술대회 발표들은 AI가 정신건강 분야에서 더 이상 보조적 기술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안을 예측하고, PTSD 환자를 조기에 발굴하며, 상담과 인지행동치료의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진단 오류, 책임 소재와 같은 문제도 함께 제기된다. 특히 정신건강 영역은 인간의 감정과 삶의 맥락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AI의 성능 향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사회적 과제가 남아 있다.
◆인간의 공감과 책임을 보조하는 AI = 이 이사장에 따르면 인간과 AI의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공감하는 능력에 있다. AI는 빠르게 계산하고 최적의 답을 찾지만 인간은 충분히 고민하고 망설이며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고려한다.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이러한 공감능력이 윤리와 책임의 출발점이 된다.
정신건강의 영역은 특히 그렇다. 인간의 고통과 불안, 상실과 회복은 단순한 데이터나 알고리즘만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감정과 관계, 삶의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AI는 이러한 과정을 보조하고 지원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는 분명 더 높은 정확성과 효율성을 가져올 것이다. 정신건강 관리에서도 조기 발견, 위험 예측, 맞춤형 개입 등 많은 영역에서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그늘 또한 함께 바라봐야 한다. 인간의 판단이 기계의 판단에 종속될 위험, 효율성이 인간적 가치보다 우선시될 위험, 그리고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약화될 위험 역시 존재한다.
이 이사장은 “AI가 빠름과 정확성을 제공한다면 인간은 공감과 책임, 윤리적 판단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AI와 인간 전문가가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결합해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