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자체 조사서도 “투표지 부족 대응 안일”
잠실 봉쇄 장기화 … 불법행위 경찰 ‘업무방해’ 적용 검토
‘경력직 면접점수표 임의수정’ 경기선관위 2명 검찰 송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꾸린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투표용지 부족사태에 대한 대응이 안일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진상규명위 “서울시선관위, 심각성 전혀 인지 못해” =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의 조현욱 진상규명위원장은 15일 경기도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진상규명위 4차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선관위의 안일한 대응과 사태 심각성에 대한 미온적 인식에 대해 책임 추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선거일 오전 11시 40~50분쯤 이미 송파구선관위 직원이 무번호 투표용지 부족 상황을 예상해 일련번호를 문의했으나, 서울시선관위는 추후 발생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서울시선관위가 송파구선관위에 무번호 투표용지 500매 일련번호와 추가로 500매 일련번호를 부여했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서울시선관위 담당 직원이 상임위원이나 사무처장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위기 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무책임한 태도로 대응한 것이 보였다”며 “오후 4시 46분쯤 송파구선관위 사무국장이 서울시선관위 선거 과장에게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고 투표소에 내보내겠다고 알리자 그때서야 서울시선관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선관위는 계속되는 구선관위의 일련번호 문의에도 사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하는 등 투표용지 부족 상황에 대해 부적절한 대응으로 문제를 더 키운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오후 5시가 넘어 중앙선관위가 민원에 의해 서울시선관위에 전화해 상황을 확인했고 그 무렵부터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경찰, 시위 불법행위 15건 수사 중 = 투표지 부족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시위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경기장 사용 차단에 따른 체육단체들의 호소 및 일부 부정선거론자들의 불법행위가 잇따르면서 경찰이 칼을 빼들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15일 오전 정례 간담회에서 시위대가 일반 시민들의 소지품을 무단으로 뒤지는 등 행위를 하는 데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옆에서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가 공범으로 적용될 경우에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청장은 “(개표소 봉쇄 시위 관련 불법행위) 15건을 수사하고 있다”며 “행위를 보면, 다중이 위력을 과시하는 굉장히 심각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수사 중인 것은 언론사 기자에 대한 폭행, 여자핸드볼주니어대표팀에 대한 자의적인 소지품 검문검색, 경찰관에 대한 모욕, 시위 참여자 사이의 충돌과 불법촬영 사건 등이다.
시위대는 지난 5일부터 개표가 끝난 투표함 반출을 막겠다며 핸드볼경기장 각 입구를 점거 중이다.
유승민 체육회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가능하면 빨리 공권력을 투입해 사무처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단기간 내 시위대 해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봉쇄로 체육단체 피해가 잇따른 데 대해서는 시위대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15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사문서변조 및 행사,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혐의로 A씨 등 경기선관위 관계자 2명을 지난 2월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이 2021년 경력 직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시험을 마친 지원자들의 면접위원 평정표(점수표)상 점수를 임의로 조정했다는 이유다.
◆사전투표, 시작은 늦추고 종료는 제 시간에? = 한편 중앙선관위가 이번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를 줄인 근거가 된 외부용역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공분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12월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선거 절차사무 개선방안-구·시·군위원회 절차사무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는 사전투표 시작 시간을 오전 6시에서 8시로 늦출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전투표를 오전 6시에 시작하므로 사전투표 기간에도 모든 직원이 투표 시작 2~3시간 전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전투표 시간 조정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가 높다”는 이유였다. 이어 사전투표 시간을 늦춰 퇴근 이후로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며 사전투표 시작은 늦추되 종료는 제 시간인 6시에 하자는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보고서는 선거일 투표용지 인쇄량을 유권자 수 대비 50% 수준으로 축소해야 할 근거로 ‘보관장소 부족’을 들면서 보관장소 확충 방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선관위 관계자 3000여명을 무더기 고발한 시민단체도 나타났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15일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허철훈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비롯해 중앙선관위 상임위원과 사무처 관계자, 전국 17개 시·도선관위, 251개 구·시·군선관위, 3487개 읍·면·동선관위 관계자 등 3000여명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업무상 횡령·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