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주민 생명선’ 병원선, 법적 지위는 없다
국회입법조사처 “유인섬 288곳 의료공백”
의료안전망 역할에도 제도권 밖서 운영
국내 유인섬 480곳 가운데 288곳이 의료시설 없이 운영되는 가운데 섬 주민 81만명의 의료안전망 역할을 하는 병원선마저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섬 주민을 찾아가는 병원선, 법·제도 공백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병원선은 섬 지역 공공의료의 핵심 수단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의료법상 의료기관이나 지역보건법상 지역보건의료기관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유인섬은 480개, 거주 인구는 약 81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약국을 제외한 보건의료시설이 설치된 섬은 192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288개 섬은 의료기관 접근이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의료취약지로 분류된다. 특히 섬 지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섬 찾아가는 공공의료, 병원선 5척이 버틴다 = 현재 병원선은 경남 1척, 전남 2척, 인천 1척, 충남 1척 등 전국 5척이 운영되고 있다.
병원선에는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인력,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등이 탑승해 내과·치과·한의과 진료는 물론 예방접종과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에 따라 17개에서 최대 90개 섬을 정기적으로 순회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병원선 이용 주민은 지역별로 수천명에서 2만명에 이른다. 인천 병원선은 연간 1만9425명, 전남은 9041명, 충남은 3221명, 경남은 2379명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보고서는 병원선이 단순한 순회진료 수단을 넘어 섬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뒷받침하는 핵심 의료자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의료기관도 아니고 보건기관도 아냐 = 문제는 병원선이 현행 법체계에서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선은 실제로 진료와 처방을 수행하지만 의료법상 의료기관도 아니고 지역보건법상 지역보건의료기관도 아니다. 현재는 보건복지부 훈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상 악화 등으로 병원선이 운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비대면진료를 활용하기 어렵다. 정부가 도서·벽지 비대면진료 확대 방침을 추진하고 있지만 병원선은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환자 정보 관리에도 한계가 있다. 보건소와 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PHIS)을 사용할 수 없어 진료 정보 연계가 어렵고 별도 시스템 구축 비용도 발생하고 있다.
병원선과 보조정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법적 보호 역시 미흡하다. 보고서는 해상 이동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분쟁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운영비 절반 이상이 유류비 = 재정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병원선 1척 운영에는 연간 7억5000만~15억원이 소요되며 이 가운데 유류비 비중이 50~60%에 달한다. 그러나 병원선은 농업·어업용 선박처럼 면세유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관련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병원선 대형화로 운영비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병원선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 상당수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어 지자체의 운영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병원선에 사용하는 석유류에 대해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병원선을 지역보건의료기관으로 규정하는 지역보건법 개정과 함께 건강보험 요양기관 및 국가건강검진기관 지정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법 개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만큼 병원선 운영에 대한 국비 지원 등 단기적인 지원책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료취약지 주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공공서비스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 대응 등 역할 확대 검토 = 장기적으로는 병원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병원선을 재난·재해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의료지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변화하는 의료환경과 지역 수요를 반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하며, 향후 국가 차원의 병원선 운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진옥 국회입법조사관은 “병원선의 새로운 역할을 논의하기에 앞서 법적 지위 정립과 주민 안전보호, 건강보험·건강검진 제도 연계, 운영비 지원 등 시급한 제도 공백부터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