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 | ① 우려되는 감시·감독 약화

"기업 어려울 때 회계부정 유혹 더 커져 … 외부감사 강화해야"

2021-02-23 11:34:02 게재

EY "질병 확산 방지책에 따른 기업 악영향, 손상 요인"

중소기업 평균 감사보수 2156만원 … "정부 지원 고려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말 기업에 대한 부당한 규제라며 '2020 기업경영장벽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경영 애로사항 80건을 공개했다. 80건에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이후 회계개혁을 통해 마련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포함됐고, 경총은 해당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막기 위해 기업이 6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체적으로 선임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기업들은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제도들에 반대했고, 기업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감사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감사제도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함께 회계개혁의 중심인 표준감사시간제 역시 위협받고 있다. 표준감사시간은 기업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적정 감사 수행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다. 제대로 된 감사를 위해 정해 놓은 시간을 줄이면 부실감사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23일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기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회계감사는) 원칙대로 가는 게 맞다"며 "주기적 감사인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는 이제 막 시작된 제도인데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한계기업 직면한 기업들 이익조정 = 기업 경영이 어려울수록 회계조작을 통한 이익부풀리기 현상이 가중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지난해 10월 대한경영학회지에 실린 논문 '한계기업 회피를 위한 원가조정'에 따르면 소위 '좀비기업'이라고 불리는 한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에 직면한 기업들은 원가조정을 통해 이익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김유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계기업 회피 의심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 대비 매출 감소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더 많이 축소했다"며 "2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영업이익의 상향보고 목적 하에 적극적으로 원가를 조정하며, 이와 같은 유인은 재무 리스크가 클 때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2년 연속 1미만 기업들의 이익조정 위험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결과다.

또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영자들은 이익을 높게 보고해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상장기업들의 이익조정행태를 실증분석한 연구에서는 2007년 성장주 기업들이 판매관리비 중 재량적 비용을 감소시켜 보고이익을 상향조정하는 방식으로 실제이익조정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기업 실적이 하락하면 회계부정의 유혹이 더 커질 수 있다"며 " 자산평가를 정확하게 하지 않는 등 재무제표 왜곡 현상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는 강도 높은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Y, 코로나에 따른 엄정한 감사 주문 = 코로나19에 따른 기업의 위험이 커지면서 글로벌 회계법인인 EY는 2020년 기업감사와 관련한 주의사항을 회계사들에게 전달했다. EY는 "경영진은 재무제표를 준비하면서 회사의 계속기업 존속 능력과 이에 대한 준비가 충분한지 평가해야 한다"며 "현재 상황에서 경영진은 코로나19 확산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과 향후 예상되는 영향까지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자산손상 평가와 관련해서도 엄정한 판단을 주문했다. EY는 "일시적인 생산공장 폐쇄와 여행 및 수출입 제한 등의 질병 확산 방지책이 기업에 미친 악영향은 하나의 손상요인으로 볼 수 있다"며 "회사는 현재 직면한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평가에서 활용한 가정과 이에 대한 근거 자료, 주요 가정의 변경 영향 등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Y는 또 "기업은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일반목적 재무제표 이용자가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관련 공시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코로나 사태가 공정가치 측정(FVM)에 반영되었는지를 사용자가 파악할 수 있는 공시가 필요한다"고 밝혔다.

◆감사비용 부담 크면 재정 지원 필요성도 =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에 따라 기업의 감사시간이 늘어나면서 비용부담을 호소하는 기업들의 불만이 커졌다. '감사시간 증가 = 감사보수 증가'라는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지만 회계감사가 강화되면서 회계법인의 매출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기업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감사시간을 줄여서는 안되고 감사비용이 부담된다면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의 감사비용을 세액공제 또는 손비로 인정하는 등 여러 가지 지원책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며 "기업의 잠재부실을 막고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자산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 2만6082곳의 감사보수는 5624억3277만원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평균 감사보수는 2156만원인 셈이다.

기업의 잠재부실 위험은 최근 동학개미 등 소액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더 큰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시가총액 1~100대 상장사 중 분기보고서에 소액주주 현황을 공시한 23개 기업의 지분율 1% 미만 소액주주들은 2020년 9월말 기준(2019년말 대비) 129.03% 증가했다. 네이버가 752.15%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SK 430.41%, 삼성전자 209.74% 등 주요기업들의 증가율도 가팔랐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개미투자자들이 계속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소액주주 증가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작은 충격에도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며 "기업의 부실이 감춰져 있다가 드러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개인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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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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