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회계감시망 코로나 사태로 ‘느슨’

2021-02-23 11:43:01 게재

자산평가 완화에 재고실사도 화상으로

“1~2년 이후 잠재 부실로 사고 우려”

글로벌 회계법인들, 기업감사 강화

기업 감사현장에서 외부감사인(회계법인)과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자산의 사용가치 측정을 놓고 갈등을 겪자 금융당국이 기업측 손을 들어줬다. 금융당국은 외부감사인이 회사의 추정치를 부인하려면 그 이유를 회사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회계업계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산손상 평가를 사실상 눈감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추정치가 명백히 비합리적이지 않고, 추정의 근거를 충분히 공시한다면 향후 회계심사·감리시 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업은 자산손상을 가능하면 낮게 평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반면, 외부감사인은 깐깐하게 평가하려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다소 느슨한 감사를 인정해준 셈이다.

23일 회계업계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상적인 감사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1~2년 후에는 잠재부실로 인한 사고가 잇따라 터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감사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시기에 기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감사를 완화한다면 더 큰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로 국가 간 교류가 차단되면서 기업의 해외사업장에 대한 감사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현장에서 대면방식으로 이뤄지던 감사가 화상으로 진행되면서 감사의 질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비대면 감사절차와 관련한 감독방안을 발표하면서 ‘감사인의 격리조치 등으로 감사인이 재고실사에 입회하지 못하는 경우 실시간 화상중계기술을 활용해 재고실사를 관찰하는 등의 대체적 절차’를 설명했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의 한 회계사는 “현장 실사를 통해 전체적인 자료를 살펴봐야지만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화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외부감사인을 속이려면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현장검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이 어려운 기업들은 여러 가지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회계업계에서는 회계감사를 신체검사에 비유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체력이 약해진 기업들에 대해 신체검사를 더 정밀하게 해서 취약부분을 가려내야 하는데, 지금은 검사를 약식으로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회계감사를 규제라고 인식하는 잘못된 접근 방식 때문이다.

글로벌 회계법인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기업 감사를 더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글로벌 빅4 중 PwC는 코로나19와 관련해 ‘경보’ 형태로 회계사들에게 여러 건의 감사유의사항을 전달했다. KPMG는 코로나19 관련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업의 자산손상을 평가하기 위해 회계사들에게 감사대상 기업의 샘플링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기업에 대한 감사시간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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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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