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 | ②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위기상황일수록 원칙 중요, 회계원칙 훼손은 득보다 실"

2021-03-11 10:56:03 게재

금융당국이 감사인 지정하면 감사품질 향상 … "감사인 선임 독립성 확보 전까지 중단 안돼"

인터뷰 |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 분식회계에 대한 유혹이 생기는데, 배고프면 밥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당연한 욕구입니다. 하지만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 등 감사환경이 깐깐해지면서 회계부정에 대한 유혹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서울대 경영학 석·박사) △삼정회계법인 회계사 △해군사관학교 전임강사 △한양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삼일 PwC컨설팅 Senior Manager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부교수(현) △한국공인회계사회 위탁감리위원(현) △과기부 회계전문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현) △한국회계학회 이사(현)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11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주기적 지정제) 등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위기상황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회계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사실상 기업의 자산손상 평가를 완화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회계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감사인 지정, "눈치 안보고 원칙대로 감사" =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회계법인)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감사인과 기업의 유착 가능성을 끊고 회계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과 별개로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기업 등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직권 지정'을 해오고 있다.

김 교수는 "회계법인에서 근무할 당시 직권 지정을 받은 기업에 나가면 눈치보지 않고 정말 원칙대로 할 수 있었다"며 "지정감사는 추후 금융당국의 감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사인과 기업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기적 지정제는 이 같은 지정감사를 상장기업 전체로 확대한 일이다. 기업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지금도 재계는 주기적 지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정제의 핵심은 감사인의 독립성이다.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품질의 한 축을 올린 것"이라며 "하지만 감사품질의 향상이라는 플러스 요인과 더불어 기업 입장에서는 감사비용이 증가한 것이어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계개혁 이후 감사인의 책임도 강화됐다. 외부감사법상 과징금이 감사보수의 5배까지 부과되고, 분식회계로 인한 형사처벌 수준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늘었다. 손해배상 시효도 3년에서 8년으로 연장돼 소송위험이 높아졌다.

김 교수는 "감사인은 자신의 책임이 커지니까 보수도 올리고 감사를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기적 지정제는 비용과 효익이 명확한 제도"라며 "양쪽을 비교하면 현재로서는 회계투명성 제고 등의 효익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빅4 회계법인 기피하는 기업들 = 주기적 지정제 시행 이후 대형회계법인인 소위 '빅4'(삼일 삼정 한영 안진)를 감사인으로 지정받는 기업들의 재지정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깐깐하게 감사를 한다고 알려진 빅4를 피하기 위해서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 당시 기업들의 반발에 부딪힌 금융당국이 '재지정 신청'이라는 예외를 둔 영향이다.

김 교수는 "빅4를 감사인으로 지정받으면 10개 회사 중 8개 회사가 도망가는 실정이라서 대형 회계법인이 오히려 영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빅4 감사가 줄어드는 것은 감사품질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견·중소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 노하우를 공유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 회장이 추진하는 것과 같이 한공회가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4 회계법인은 글로벌 회계법인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산업 분야별로 최신 감사기술을 전달받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중견·중소법인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주기적 지정제를 통해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감사인의 회계감사 능력을 높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개선을 위해 금융당국은 회계법인 조직감리를 통해 감사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주기적 또는 직권지정을 받았는지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빅4 회계법인을 지정받았다가 변경하는 경우 그 내용도 공시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인 변경 내용을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해서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감사인 변경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정제 존폐 논의, 시기 상조" = 김 교수는 '주기적 지정제를 폐지하자'는 재계의 주장을 "시기 상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정제도가 왜 도입됐는지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라는 전제 조건이 이행돼야 한다"며 "감사를 해보면 비용을 지불하는 기업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게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의 경영자가 실질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고 보수를 결정하는 시스템에서는 '이해상충'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사례가 많은 경우, 소액주주 보호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주기적 지정제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2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밝혔다. 첫째 감사인을 선임하는 주체인 감사위원회 등의 독립성이 확보되고, 둘째 자본시장에서 자율적인 규율기능이 작동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당한 이유로 감사인을 교체하거나 덤핑으로 감사를 맡겨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훼손되면 주가하락과 채권자의 부채회수, 소액주주의 소송 등이 발생해 기업 스스로 회계감사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김 교수는 "미국은 감사인 교체가 굉장히 큰 이슈다. 기관투자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때문에 왜 바뀌었는지 철저히 공시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자본시장의 시장규율기반이 약하고 감사인 선임에 경영자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주기적 지정제를 우리나라만 시행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감사비용 증가했지만, 다른 국가 대비 낮아 = 코로나 상황에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재계 단체들은 감사비용 증가를 지정제 폐지의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실제로 주기적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 도입 등으로 기업의 감사비용은 평균 25~3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국과 비교해 회계법인의 감사보수가 낮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시간당 감사보수의 경우 2009년 8만3000원에서 하락하기 시작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만5000원 수준을 유지했다"며 "2018년 시간당 7만6000원에서 2019년 7만9000원으로 상승했지만 10년 전인 2009년 시간당 감사보수 보다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당 감사보수가 미국의 경우 33만원 수준으로 우리의 4배가 넘는다"며 "미국과의 물가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우리나라의 감사보수가 비싸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간당 감사보수가 상승하지 않았는데 감사보수가 올라간 것은 투입되는 감사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회계정보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정보이용자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더라도 타인을 배제하거나 경합하지 않고 원하는 회계정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심지어 회계정보에 문제가 있으면 회계법인에게 소송도 할 수 있다"며 "회계정보는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고, 투자자들이 회계정보를 믿지 않으면 자본시장은 붕괴된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감사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지만 장기적으로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높아지면 자본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등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며 "비용의 지출 시점과 혜택을 보는 시점이 달라 기업들이 혜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 기업들이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에 투자하는 것과 회계감사 비용을 내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가지 모두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외부감사인도 지배구조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주기적 지정제는 아직 시행초기이고 회계정보의 품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사인 지정제도 2가지 - 주기적 지정과 직권지정

감사인 지정 제도는 회사가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는 대신 증권선물위원회(금감원에 업무위탁)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크게 주기적 지정과 직권 지정으로 구분된다.


주기적 지정은 연속하는 6개 사업연도 감사인을 자유선임한 △주권상장법인(코넥스 제외)과 △소유·경영미분리 대형 비상장회사에 대해 3개 사업연도 감사인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형 비상장회사는 직전 사업연도말 자산규모가 1000억원 이상으로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이 50%이상이고,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자인 주주가 대표이사인 경우에 해당된다. 다만 최근 6년 이내에 실시한 감리결과가 무혐의인 경우 지정이 면제되며, 감리중인 경우와 기존 감사계약이 미종료된 경우 지정이 연기된다.

직권 지정은 증권선물위원회 감리결과에 의한 감사인 지정조치, 선임기한 내 감사인 미선임 등 투자자보호를 위해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경우(직권 지정사유)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직권 지정사유는 △상장예정법인 △감사인 미선임 △감리결과 조치 △상호저축은행법상 지정요청 △재무기준(부채비율 과다) △관리종목 △횡령·배임 발생 등이다.

["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