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 심리방역

코로나 위기학생 급증 … 치유책 '부실'

2021-06-09 11:40:40 게재

가정의 위기, 코로나 우울로 이어져 … 심리치유, 시도 교육청 따라 편차 심해

코로나19로 학생들은 지쳐갔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에 더해 심리적 방역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남과 접촉 횟수가 줄었고,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낯선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학생들은 '집콕' 시간이 길어지면서 또래 친구들과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해 정부는 심리치유와 '코로나 우울'에 따른 대안 프로그램 마련을 제시했다. 장석웅 전남교육감은 최초로 '심리방역'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소년 시기 정신건강을 지켜줄 새로운 정책과 대안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심리치유와 생태방역'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시늉만 내는 수준에 그쳤다. 교육부도 시도교육청도 '코로나 우울'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3일 부산 송정중학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치유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코로나우울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부산송정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학교 텃밭에 타프를 치고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전호성 기자


"쌤, 고기 더 먹을래요." 진우(가명)가 손을 들고 한손으로 식판을 두들겼다. 스텝들이 참숯불에 고기를 구워 식판에 담아준다. 식사를 마친 진우는 "가족과 이런 캠핑을 가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3일 공립대안학교인 부산 송정중학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치유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날 송정중학교에서 진행한 '숲으로가는 행복열차' 치유프로그램은 부산교육청 요청에 따라 '청소년바로서기지원센터'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초여름 비는 장맛비처럼 쉬지 않고 종일 내렸다. 운동장 구석 텃밭에 타프를 치고 저녁 야외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우비를 입고 텃밭을 뒤졌다. "뭘 찾는데?"라는 질문에 "우리가 심은 딸기요"라며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더니 멘토 입에 넣어준다.

'꽃들에게 희망을' 시간에는 손동작을 유연하게 하고 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드림캐처'를 만들었다. 사진 전호성 기자


식사 중에도 자리를 옮기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우산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 구경을 하거나 콧노래를 부르며 농작물을 만지는 아이들. 단지 기분이 좋아서 그러나보다 했다.

쉬는 시간에는 학교농장을 찾았다. 학생들은 목공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만들었다는 염소집을 자랑했다. "염소가 3마리뿐이예요. 더 키우고 싶어요." 텃밭에 무슨 채소를 심었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완두콩 마늘 딸기 당귀 토마토 고추 쑥갓 호박 …"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1박2일 동안 아이들은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조별 규칙은 스스로 만들었고 만족해했다. 강당에서 진행한 '런닝맨'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신나게 뛰고 소리를 질렀다. 땀을 식히고 나선 텃밭과 학교 주변 작은 숲으로 나갔다.

무지개색 꽃잎과 모양이 다른 나뭇잎 7개씩 찾는 임무를 수행했다. 비 내리는 물소리를 녹음하는 시간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정화했다. '꽃들에게 희망을' 시간에는 손동작을 유연하게 해주고 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드림캐처'를 만들었다.

드림캐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들었던 토속 장신구로, 고리 모양의 수제 장식품이다.

다음날 아침 프로그램 시작 전에 강당에 모인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마지막 시간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온전한 나와 만나기)을 진행했다. 헤어지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멘토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차별 아닌 차이 인정해야 = 1학년 참석자 20명 중에서 14명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다. 우울이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알러지나 비염 등으로 식이조절을 요한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은 아이도 여럿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반 학교와 비슷한 교육과정을 배운다.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체육 예술 영어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과 자유학년활동이 교과과목이다. 여기에 졸업 후 학생 진로를 위해 일반 중학교 교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부 교과 시수를 줄였다. 대신 학생 특기 적성을 고려해 다양한 선택교과를 편성해 운영한다.

선택교과는 대안학교 성격이나 학생들의 희망과 시대상황에 따라 바뀐다. 주요 교과활동으로 문화예술체험과 노작원예, 융합프로젝트 등을 운영한다. 요리나 켈리그라피, 국악 미디어에 관심과 참여율이 높았다. 텃밭을 가꾸고 동물을 키우는 것도 교육과정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성공적인 직업생활, 융합프로젝트, 산악등반 등 일반학교에서 접하기 어려운 과정을 공립대안학교에서 소화한다. 교사들이 쏟는 정성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몸이 아픈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는 '돌봄' 기능과 교육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정중학교 한 교사는 "대부분 정서적 지지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며 "그럼에도 맑고 밝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송정중학교는 김석준 부산교육감이 정성을 많이 쏟는 학교다. 2019년 공립대안학교로 출발했다. 김 교육감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했다.

핵심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교육과정과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립 대안교육, 학생에 맞춘 매뉴얼 필요 = 교원단체들은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교육과정 개선을 요구했다. 교사들은 원격수업(동영상수업)을 통해 얻고 잃은 게 무엇인지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가치를 잃었고,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시스템이 깨져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했다. 공동체 경험이 부족할 경우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고 더불어 사는 시민사회 진입도 어려워진다. 비대면 시대가 확장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렵다.

이런 교사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우울증 등 정신건강 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전년 대비 7.1%나 증가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건수도 2019년 대비 44.8%나 늘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올해 1월 말 '2021년 학사 및 교육과정 운영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심리치유 지원 방안과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내용이다. 일반학생, 자가격리 확진자, 고위험군으로 구분해 맞춤형 프로그램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심리방역 대상에 교직원과 학부모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교육청마다 큰 차이를 보였고 시늉만 하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교육청도 많았다. 대전과 충청권 상담교사들은 '현장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비판했다. 심리치유와 상담을 진행할 상담교사와 치료를 해야 할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일선 상담교사들은 "상담이 필요한 위기학생이나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교육청마다 온도차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Wee센터 심리상담이나 학생 생활지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보면 된다"며 적극적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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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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