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행 새 주거급여 진단 3│과제 및 전문가 제언
"부양자의무기준 폐지·완화해야"
급여 감소하는 수급자 많아 … 급여내역 현실화·전달체계 정비·모니터링 등 시급
서울 도봉동에서 손자와 살고 있는 김 아무개(67)씨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수급비와 식당 등 허드렛일을 해 버는 약간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던 중 2012년 상반기 구청에서 확인조사 후 수급비 20만원을 삭감했다. 손자 부양의무자인 며느리(37)에게 소득이 발생했다는 것. 며느리는 이혼후 손자의 친권을 포기했고, 김씨는 현재 며느리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청직원은 며느리의 소득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수급비를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며느리에게 연락해 해당 내역(사업주 신고)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며느리가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정상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친구가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고 이해를 구했다. 결국 김씨는 수급비 20만원이 삭감된 채 오늘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새 주거급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현실적인 급여, 부양의무자기준 및 소득인정액기준 , 급여전달체계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부양의무자기준과 급여 적정성, 급여전달체계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기준이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전혀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주거급여가 삭감되거나,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부양의무자에게 재산이나 소득이 있으면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 소득에 간주부양비를 책정, 해당 금액만큼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주거급여 사각지대 온상 = 주거급여법 5조(수급권자의 범위)는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수급대상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이다. 일정 소득과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0년)에 따르면 소득인정액은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 초과로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기초수급제도에 포괄되지 못한 사람이 103만명(60만가구)에 달하고 있다.이는 수급자 157만명의 2/3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그동안 부양의무자기준을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새 주거급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제도를 없애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현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다소 완화해,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지난해 212만원(4인 기준)에서 올 7월부터는 419만원으로 완화키로 했다.
김선미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부양의무자기준은 광범위한 주거급여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온상이기에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며 "소득대비 주거비 지출비율 등의 기준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경준 성균관대(사회복지학) 교수도 "공공부조는 수급대상의 경제적 능력을 따지는 것인데, 가족의 경제적 능력을 감안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수 있다."며 "당장은 아니지만 점차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지금은 모두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앞으로는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미국 영국 프랑스는 부양의무자기준이 없는 반면, 독일은 직계자녀와 부모간 상호부양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스웨덴은 부부와 18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서만 부양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실무적으로 주거급여 담당 창구인 시군구에서는 부양의무자 소득조사를 위해 수급권자에게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구비서류를 요구하는 것도 수급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양의무자가 있지만 실제로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인 가족단절에 대해 수급권자 스스로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많은 수급권자들이 신청을 포기하게 만드는 진입장벽 역할을 한다는 것.
◆급지 낮고 가족 많을수록 이전보다 급여 줄어 = 급여 적정성도 논란거리다. 급여가 너무 낮게 책정돼 실질적인 공공부조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간 1인 수급가구(전국 동일)는 약 10만7000원의 주거급여를 받았다. 고시원·쪽방의 월임대료(약 25만원)를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다. 현재 수급가구 중 30% 가량이 보증부월세, 무보증월세로 거주하고 있다. 새 주거급여 시행으로 급여액이 평균 8만→11만원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4인 가구(서울 기준)의 경우, 주거급여가 28만원으로 책정돼 있는데, 이 금액의 보증부 월세로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새 주거급여가 도입되면서 평균 급여액은 상승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이전보다 수급액이 줄었다.(도표 참조) 급지가 낮을수록, 가구원수가 많을수록 기존 급여보다 적어진다. 특히 실제임대료가 기준임대료보다 적은 경우 실제임대료만 지급할 방침이어서 공공임대아파트 거주자 등의 급여는 대부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이행급여'를 편성해 일정기간 그 차액을 보전할 계획이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선미 센터장은 "주거급여 문제에서 가장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급여수준"이라며 "의료비든 교육비든 뭔가 더 들어가게 되면 월세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택·사회복지담당 직원 혼재 = 주거급여 전달체계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거급여를 분리해 시행하는 것이 처음인데다, 담당부서도 보건복지부에서 국토교통부로 이관되고, 전국 시군구까지 연관돼 움직이다보니 혼선이 많다는 것. 현재 일선 시군구에서는 지자체별로 주택담당과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뒤섞여 일을 맡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업무에 대한 교통정리와 함께 관련 공무원 및 기관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이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통계센터실장은 "공공부조에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모니터링이 안 되고 있다"며 "중앙정부 차원의 정확한 업무분장과 함께 지자체에서도 사업에 애정을 갖고 전담인력을 시급히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주거급여의 기초를 다진 김혜승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새 주거급여가 제대로 수행된다면 서민주거복지 수준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 효과적인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정기적인 평가와 피드백을 통한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월 시행 새 주거급여 진단" 연재기사]
- [1 주거빈곤 실태] 비닐하우스 판잣집 고시원 거주가구 급증 2015-03-18
- [2 통합급여에서 맞춤형으로] 수급대상 늘고, 급여액도 확대 2015-03-19
- [3 과제 및 전문가 제언] "부양자의무기준 폐지·완화해야" 201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