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명에 대기업부장이 치킨집 사장으로
ICT업계 고용없는 성장
제조업도 로봇이 주인행세
2003년, 2009년, 2014년은 대한민국에 치킨집이 늘어난 해로 꼽힌다. 이렇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세 해 모두 대한민국 대표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인 KT가 명예퇴직을 실시한 해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40~50대인 퇴직자들이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자영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KT에 따르면 2003년 5500명, 2009년 6000명, 2014년 8200명이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에 따라 KT 직원수는 2000년 4만6095명에서 2014년 현재 2만3371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는 1년에 1600명 이상씩 줄어든 것으로, 매년 웬만한 중견기업 하나씩 없어진 셈이다.
'잘나가는' ICT기업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컴퓨터로 상징되는 디지털혁명을 비롯한 기술발전이 이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KT측의 설명이다.
실제 90년대까지 전화국 면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교환기를 비롯한 장비들은 냉장고 크기로 줄었고, 구리선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망도 구리선에 비해 1백억 배 성능이 우수한 광케이블로 급속하게 대체됐다. 건물 2~3층 높이에 달하는 크기의 기계식 장비가 하던 일을 자그마한 서버에 탑재된 소프트웨어(SW)가 담당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장비나 통신망 유지보수를 맡던 직원들은 설 자리를 잃고, 명예퇴직으로 몰렸다.
KT 관계자는 "네트워크 기술이 진화되고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유휴 인력이 늘어나는 것은 IT나 통신업계에서는 비켜가지 못할 고민과 숙제"라고 말했다.
한편 2000년 10조3221억원이었던 KT 매출은 지난해 23조4215억원으로 늘었다. ICT기업의 일반적인 성장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규모면에서 조금씩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대표적인 전자·ICT기업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선 삼성전자의 경우 2004년 57조6324억원이었던 매출은 2014년 206조2059억원으로 3.6배로 커졌다. 하지만 본사기준 직원수는 6만1899명에서 9만6510명으로 1.6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해외생산 증가 등 사업구조나 사업내용의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매출 증가에 비해 고용증가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내수기업인 SK텔레콤의 경우에는 매출액은 크게 늘었지만 고용증가는 전혀 없었던 경우다. 매출액은 2004년 10조5710억원에서 2014년 17조1640억원으로 커졌지만 고용은 4249명에서 4253명으로 제자리걸음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사업구조 변화가 매출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도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기술적 수단이 도입된 것도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조립로봇 등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 확대는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국내생산 기준으로 2008년 167만3580대, 2014년 187만6408대를 생산해 6년만에 생산량이 12% 늘었다. 하지만 고용은 3만2260명에서 3만3337명으로 3% 느는데 그쳤다.
현대자동차는 차량 외관을 제작하는 차체공정의 경우 100% 로봇이 담당하는 등 자동화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
정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술변화는 기존 기술에 특화된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새로운 기술에 적합한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며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컴퓨터가 할 수 있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화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던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이 필요한 직무도 컴퓨팅 파워의 발전으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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