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개교 중학생 '행복열차'여행
"밤하늘 수놓은 별 보며 잠들면 달콤한 꿈을 꿔요"
미래사회는 경쟁보다 '공존' … 행복열차서 '부적응을 적응으로' 바꾸는 연습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고 잠이 들면/ 달콤한 꿈을 꿔서 기분이 너무 좋아져/ 계속 이런 기분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 같아"
강주희(가명. 봉림중1)양이 미술치유 프로그램 중 손수건에 적은 글이다. 글씨 사이사이에 노란 물감으로 작은 별들도 그려 넣었다.
서울지역 5개 중학교학생 28명이 1일 '국립 희리산 자연휴양림'으로 가을여행을 떠났다.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하는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다. 서천 국립자연휴양림과 열차여행, 국립생태원을 연계해 운영했다. 서울지역 중학교 부적응 위기학생들과 함께한 이번 행사는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체험활동 중심으로 구성했다. 이를 통해 정서적·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학교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목표다.
용산역을 출발한 KTX가 빗속을 뚫고 익산역을 향해 달렸다. 참석자들이 간단하게 소개를 마치자 '진구 쌤의 열차특강'이 시작됐다. 열차 안은 초반전부터 열기로 후끈거렸다. 열차 특강을 맡은 김진구 교사는 대전 동아마이스터고를 전국 최고 수준의 '행복한 학교'로 만든 핵심인물이다.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김 교사 강의주제는 '부적응을 적응으로 바꿔봐'. "부적응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쉽다. 한꺼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조금씩 서서히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 잘하려고 하거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학습부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에게 적합한 목표를 세우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남들도 나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청소년 상담원 조사에 따르면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 중 '교과에 대한 흥미상실'(학습부적응)이 43.9%로 가장 많다. 다음이 친구, 교사, 학교와 갈등이 39%, 24%는 가정 불만이 원인으로 꼽혔다.
김 교사는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조합하고 풀어서 설명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진화를 겪어 왔는지 쉽게 설명했다. "다윈과 밀접한 단어가 '최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다. 사람들은 다윈이 적자생존, 즉 경쟁만 강조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라며 "여성생태학자 중 45%는 '공생'에 관해 연구를 했다"고 설명했다. 경쟁을 피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피를 흘리며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특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에서 청바지를 사는 데 남자는 평균 6분, 여성은 3시간 26분이 걸리는 이유가 남성은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인 반면 여성은 계속해서 정보를 찾아 저장하려고 한다"며 "여성이 가격을 적어놓지 않아도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남녀는 수천년 동안 서로 다르게 디자인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여러분들 각각은 우주의 소중한 생명체"= 서천 생선구이 협동조합에서 행복한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국립생태원으로 향했다. 이날 최재천 생태원장이 아이들을 위해 일정에도 없는 깜짝 출연을 했다.
해외출장을 다녀온 최 원장은 짐도 풀지 않고 단숨에 달려왔다.
최 원장은 '강연보다 질문을 받겠다'며 아이들과 거리를 좁혔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사이 질문은 박백범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에게 돌아갔다. 박 부감은 "우주에는 생명체가 얼마나 존재할까? 여러분들 모두가 우주의 소중한 생명체"라며 화두를 던졌다.
답변에 나선 최 원장은 "우주는 내 전공분야가 아니지만 별 이야기를 해보자"며 대화의 장을 우주 공간으로 옮겼다. "우주에는 별이 몇 개쯤 될까요?"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데, 외계인은 정말 존재할까?" 최 원장의 질문에 승민(효문중 1학년)이가 손을 들고 답했다. "우주에는 외계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 원장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별 중에는 분명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좀 더 탐구해보면 좋겠다. 이런 학문분야가 미래 새로운 생물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지구 같은 별이 은하에 1000억개쯤 있고, 이런 은하가 우주에 1000억개쯤 된다고 하니 계산해 보시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공존과 공생, 배려를 쉽게 설명하는 최 원장 강의에 빠져들었다.
"지구별은 식물이 지배하는 행성이다. 숫자로 성공한 것은 곤충이고…. 무게로 성공한 것은 식물이다. 곤충과 식물의 꽃가루받이는 기막힌 공생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공생을 하면 오래 살아남는다. 둘 다 이득을 보는 게 공생관계. 공생을 하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고…"
◆티셔츠에 생명을 불어넣다 = "와 ~ 진짜 신기한 게 많네요. 수학여행도 생태원으로 왔으면 좋겠네요" "고무나무, 바나나 나무, 악어와 열대동물 등을 직접 보게 돼 겁나게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쌤~ 집에 가기 싫어요. 여기서 며칠 더 있다 가면 안돼요? 밥도 겁나 맛있고"
생태원 탐방을 마친 장우현(가명. 우신중1) 군이 너스레를 떨었다.
휴양림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나만의 티셔츠 꾸미기'에 몰입했다. 휴양림 주변에서 주어온 나뭇잎과 가을꽃이 재료다. 민지가 빨강 물감으로 티셔츠에 작은 하트를 여러개 그렸다.
아이들은 '정말 힐링이 된다' '숲은 마음의 쉼터' 등 마음속 생각을 손수건과 티셔츠에 표현했다.
미술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한 신기영(49. 민화작가)강사는 "자기 표현력이 긍정적이고 좋았다. 티셔츠나 손수건에 '내가 존중받고 배려 받았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깊게 몰입했다"며 "발표시간에 자신의 작품을 당당하게 설명한 후 전시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자존감이 많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게 풍금이라고요? = 아이들은 다음날 한국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충남 논산 강경에서 마지막 일정을 소화했다. 우선 일제시대 은행건물을 손질한 '강경역사관'에서 설명을 듣고 전시한 물건들을 살펴봤다. 일제 강점기에나 볼 법한 가옥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강경 시내를 영화세트장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당시의 관청과 은행, 학교, 멈춰버린 시계를 보며 신기해했다. 기록에 의하면 강경의 상권은 1905년쯤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경술국치가 있던 1910년에는 강경의 거의 모든 상권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간다. 이때 모여든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야 집을 짓고 건물을 세웠는가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강경은 점차 근현대사 건물들이 가득히 들어서는 고장이 됐다.
강경역사문화연구원 김무길(74) 연구부장은 "강경에는 근대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조선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며 "주권을 빼앗긴 민족이 얼마나 비참한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후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백범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 열차를 타보니 감개무량이다. 근심과 걱정이 있거나 학교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꼭 행복열차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 열차를 탈 수 있도록 해서, 그들이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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