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이뤄지는 주식 내부자거래 ③

미공개정보 이용 기승, 처벌은 아직 걸음마

2016-04-28 10:49:17 게재

피해자 손배소송 역대 1건뿐 … 2·3차 정보수령자 제재 가능, 사례는 없어

미국의 기업소속 변호사인 크루거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11건의 인수합병 정보를 외부로 빼돌렸다. 과거 회사 동료였던 로빈슨이 정보를 받아서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인 바우어에게 알려줬다.

크루거와 바우어는 중간연락책인 로빈슨을 통해 연락을 취했고 감독기관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나 선불전화를 이용했다. 합병과 관련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바우어는 3000만달러, 크루거는 50만달러, 로빈슨은 69만달러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들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해 바우어에게 3160만달러, 크루거는 51만6000달러, 로빈슨은 84만5000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SEC는 2012년 사건 조사에 착수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부당하게 얻은 이익 전부를 몰수한 것이다. SEC는 이들을 검찰에 넘겨 형사처벌도 받게 했다.

올해 1월 서울남부지법은 미공개정보이용혐의로 기소된 CJ E&M 직원 3명과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받은 애널리스트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애널리스트 1명에게만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2013년 10월 CJ E&M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는 미공개 정보를 회사 직원들이 애널리스트 등에게 알려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2013년 10월말 조사가 시작돼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지만 대부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미국과 영국 등이 미공개정보이용혐의를 비롯한 불공정거래 사건들에 대해 신속하게 제재를 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금융당국이 별도의 제재를 하지 못하고 사법처리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미공개정보이용 사건의 경우 혐의 입증이 쉽지 않고 부당이득을 박탈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에 의한 제재 필요성이 크다. 사법절차로 가면 엄격한 입증 요건에 따라 오히려 처벌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과징금·민사제재 필요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제재결과를 빠르게 시장에 공개해 유사한 불공정행위를 예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사 착수부터 종결까지 기간이 짧은 민사제재를 형사처벌보다 더 선호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조사 대상자들이 혐의를 인정하면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공개하고 과징금 등 민사제재가 이뤄지면 또 다시 공개하는 등 사건 진행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영국금융감독청(FCA)이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부가한 제재금액은 2009년 3360만파운드(한화 약 562억원)였지만 2013년 4억2500만파운드(한화 약 7117억원)로 급증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경우 2009년 부과한 제재금액은 23억5400만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41억6000만달러(한화 약 4조7700억원)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불공정거래사범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는 데 그치고 검찰 수사와 재판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혐의 입증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다.

특히 미공개정보이용 등 불공정거래 조사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에는 강제조사권이 없다. 미국과 영국 등이 강제조사권을 기반으로 통신조회, 금융거래기록 등에 대해 조사권을 활용해 내부자 거래행위에 대해 적극 조사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부당이득 박탈 '미흡' = 최근 불거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한진해운 주식 매각과 관련한 미공개정보이용의혹 사건은 일반 투자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진그룹과 특수관계인인 최 회장이 한진해운의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신청 전에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했고 이후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회피했다. 하지만 자율협약 신청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개인투자자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입었다.

미공개정보이용 사건의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소송이 제기돼 판결을 받은 사건은 1건에 불과하다.

지난 91년 신정제지의 주거래은행이던 전북은행은 신정제지의 부도사실을 미리 알고 대출담보용으로 받아 뒀던 주식 8만주(4억2000여만원 상당)을 매각해 손실을 회피했다.

당시 신정제지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 A씨는 전북은행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 남부지원은 94년 전북은행 등이 A씨에게 459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전북은행 등이 주식을 매도한 것과 같은 시기에 반대방향으로 매수했다며 전북은행 등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전무했다. 2014년 금감원이 악재성 미공개정보가 발표되기 전에 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SMEC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자 개인투자자들은 SMEC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면서 투자자들도 소를 취하했다.

당시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는 "시세조종 사건의 경우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피해자들이 배상받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미공개정보이용사건은 너무 미미하다"며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고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은 물론 부당이득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미공개정보의 1차 정보수령자 이외에 2·3차 정보수령자까지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됐지만 아직까지 제재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2·3차 정보수령자는 형사처벌이 아닌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제재 대상 확대에 따른 시장 위축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2·3차 정보수령자에 대한 첫 제재를 어떤 사건으로 하느냐에 따라 향후 사건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심도 있는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예방·적발 시스템 갖춰야 =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미공개정보이용사건에서 상장기업 임직원이 연루된 경우가 43.5%를 차지했다. 금감원은 이들을 조사한 결과 상장회사 관계자나 일반 투자자들이 관련 법규를 정확히 모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 회사의 IR담당자가 중요사항 공시 직전에 투자자들이 사실여부를 지속적으로 문의하자 마지못해 미공개정보를 확인해준 사건이 있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확인해준 것이지만 해당 정보가 미공개 중요정보라는 사실과 투자자들이 이를 거래에 이용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위법행위가 인정된다.

금감원은 미공개정보이용의 경우 일반인의 법규인식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교육을 통한 사전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사후 적발 중심의 우리나라와 달리 사전에 위험요소를 미리 적발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위험계량분석센터를 통해 등록정보 감시정보 제보정보 시장정보 소셜미디어 정보 등을 모두 결합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잠재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조사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험기반조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위험계량분석센터'를 설치해 예방적 관점에서 선제적 대응을 위한 빅테이터 방식의 분석체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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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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