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이뤄지는 주식 내부자거래 ②
내부 의사결정도 구체화되면 '미공개정보'
한진해운 지분 매각, 정보전달 과정 밝히는 게 핵심 … 확정된 정보 아니어도 이용시 처벌
한진해운 전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을 앞두고 주식을 전량 매각한 것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거세다.
25일 금융당국이 자율협약 신청을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했을 것이라는 미공개정보이용 의혹에 대해 고강도 조사에 나서면서 형사처벌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공개정보이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회사 내부의 중요정보가 언제 생성됐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전달됐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 회장은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37만주 569주를 매각했고 두 딸은 15일부터 22일까지 각각 29만8679주를 팔았다.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 지분 0.39%를 전량 매각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공시한 22일에 주식 매각을 완료했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정보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정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당 정보가 언제 생성됐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요정보는 어느 한순간 갑자기 결정되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구체화되는 것이라서 최 회장 일가가 매각을 시작한 8일이나 두 딸들이 매각을 시작한 15일을 전후해 '자율협약 신청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율협약 신청' 의사결정 시점은 = 법원은 중요정보의 생성시기에 대해 명확하고 확실하게 완성된 경우를 인정 요건으로 두고 있지 않다. 투자자 입장에서 증권 거래에 관한 의사결정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할 정도로 구체화되면 정보가 생성됐다고 보고 있다.
모 카드사의 사장이 그룹 부회장 등에게 '수정사업계획 및 주요 경영현안'이라는 대외비 문건을 통해 연간 적자액이 1조2893억원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약 4000억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했다.
법원은 합리적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해당 정보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고 확실하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도 주식 거래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할 정도로 구체화됐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보생성 시점은 대외비 문건을 보고한 날이다.
모 상장법인의 재경부 부장은 이사회 소집과 무상증자 일정·안건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무상증자를 위한 이사회 결의가 공시되면 회사 주가가 급등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매매해 부당이득을 챙겼다.
법원은 "이사회의 무상증자 의결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정보는 회사의 중요한 내부정보"라며 "대표이사와 회장 겸 대주주 사이에 무상증자를 하기로 합의한 사실만으로도 무상증자의 실시에 관한 정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의 경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언제 자율협약 신청에 대한 결정을 내렸는지, 내부적으로 자율협약 신청을 검토한 시점이 언제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 시기를 전후해 최 회장 일가가 집중적으로 주식을 팔았다면 미공개정보이용혐의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통화 기록 등 증거확보 필수 = 미공개정보이용혐의는 시세조종혐의를 밝히는 것보다 더 어렵다. 시세조종은 주가 조작을 위한 흔적이 남아있어 자금 추적 등을 통해 혐의 입증이 가능하지만 미공개정보이용은 사람들의 '말'로 전달되는 것이어서 입증이 쉽지 않다. 혐의 입증의 성패는 정보의 전달 과정을 밝히는 일이다.
미공개정보이용혐의와 관련한 조사와 수사는 한국거래소의 이상거래 심리 →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조사 →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의결 → 검찰 수사와 기소 → 법원 재판 등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정보 전달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조회는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조사단계에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금융위원회는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권이 있고 검찰과 신속한 협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조사단계에서도 미공개정보 전달과정을 입증하고 있다.
당초 금감원 조사가 예정됐다가 금융위가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은 지난해 삼성과 한화그룹의 빅딜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의 전현직 임직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테크윈의 상무 A씨와 부장 B씨는 삼성테크윈이 한화그룹에 매각된다는 정보를 알게 되자 차명계좌 등으로 보유하고 있던 삼성테크윈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한화그룹 주식을 매수했다.
부장 B씨는 삼성테크윈의 전직 대표이사와 전무 등에게 전화해서 매각 사실을 알렸고 전직 대표 등은 보유 중이던 삼성테크윈 주식을 모두 처분해 손실을 피했다.
조사결과 이들의 총 손실회피 금액은 9억 3500만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A씨와 B씨는 내부자, 전직 대표이사 등은 1차 정보 수령자로 처벌 대상이다.
금융위 자조단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처음으로 디지털포렌식 기법을 이용해 미공개정보 전달과정을 입증했다. 디지털포렌식 기법은 범죄수사에서 사용하는 과학적 증거수집과 분석기법의 일종이다. 컴퓨터나 휴대폰 등 각종 디지털기기에 남아 있는 통화기록, 이메일 접속기록 등의 데이터를 복구·분석해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자조단은 최 회장 일가에 대한 조사에서도 혐의 입증을 위해 디지털포렉식 기법을 활용할 전망이다.
◆직무 관련성은 폭넓게 인정 = 미공개정보이용 처벌 대상은 회사 내부자나 준내부자, 1차 정보수령자다. 회사 내부자는 직무와 관련해서 미공개정보를 알게 된 경우에 한해 처벌 대상이 된다.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하는 데 법원은 비교적 폭넓게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고 있다.
제약회사의 생산본부장이 구내 식당에서 기술이전계약 담당 임원을 만나 회사가 개발한 약품이 다른 회사에 기술 이전된다는 내용을 전해 듣고 주식을 매수해 부당이득을 얻은 사건에 대해 법원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총무과 직원이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이 작성했다가 파기한 이사회 결의안을 보고 주식을 매수한 경우도 직무 관련성을 인정했다.
회사 내부 전산망에 올라온 정보를 보고 주식 매매를 했다가 처벌된 사례도 있다. 회사 직원이 사내 전산망에 '기술시연회'에 관한 주간 업무보고를 보고 개발 중인 기술이 완료됐다는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했고 부당이득을 챙겼다.
해당 직원은 개발과 홍보 업무를 하지 않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접근할 수 없는 사내 전산망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것은 지위를 이용해 미공개정보를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분야의 전문 변호사는 "회사 임직원의 지위에 있으면 얻을 수 있는 내부 정보의 경우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폭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주식 내부자거래'연재기사]
- ①│ '미공개정보 이용' 숨겨진 '그들만의 리그' 2016-04-22
- ②│ 내부 의사결정도 구체화되면 '미공개정보' 2016-04-26
- ③│ 미공개정보 이용 기승, 처벌은 아직 걸음마 201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