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1년, 다시 분권을 말한다
서울시장-구청장 권한, 자치구-주민과 나눈다
박원순 "정부, 서울시 모범 따르라" 분권 선도
자치구, 동단위에 재정·권한 주고 주민참여 현실화
서울시가 취약계층 청년층에 지급하는 활동지원금 이른바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중앙정부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에 취업준비와 구직활동에 쓸 활동비를 지원하겠다는 지방정부에 '사전협의'를 이유로 딴지를 걸고 있다.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는 분권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내일신문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광역-기초간 분권과 협치를 선언한 서울시에 주목, 분권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답답함과 불통 느낌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협조해달라며 6개월만에 국무회의에 참석했지만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장관과 설전만 벌이다 빈손으로 돌아온 직후 이렇게 토로했다. 지방재정을 압박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편성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 비난성 발언을 들은 지난 2월 국무회의나 다름없는 풍경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한숨을 돌릴 정도는 된다."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박원순 시장은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 중앙정부발 복지정책을 감당하느라 해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족해서 연말이면 50억원에서 70억~80억원까지 자체 조달을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는데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7월 서울시가 자치구와 분권선언을 한 뒤 자치구마다 120억~200억원 정도 추가재원이 생겼다.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부담 떠넘기기를 비롯해 사회보장제도 협의 의무화와 복지정책 규제, 지역 특화형 복지제도 축소, 재정위기 지자체에 긴급재정관리인 파견, 지방재정제도 개편 강행…. 성년이 지난 지방자치를 도리어 퇴행시키는 중앙정부발 법제도 개선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분권 행보가 주목된다. 광역지자체에 쏠린 권한과 재정을 기초지자체에 나누겠다며 분권을 선언, 중앙정부에 화답을 요구한지 1년이 지났다.
2015년 7월 21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유덕열 당시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을 비롯한 구청장이 한자리에 섰다. 재정을 비롯해 서울시 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자치구에 미치는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미리 따지고 기초 차원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사무는 아예 자치구에 이양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자치분권 실천을 위한 약속'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조정교부금 비율 상향은 자치구가 가장 반긴 부분. 보통세 21%인데 22.78%로 늘려 자치구별로 평균 119억원씩 총 2862억원을 서울시가 더 내놓기로 한 것. 복지비 인건비 등 살림살이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재원(기준재정수요 충족도)이 97.1% 수준인데 100%까지 높여야 한다는 자치구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시의회에서 제동을 걸어 올해 조정교부금 비율이 22.6%로 당초 약속보다는 줄었지만 자치구별로 평균 교부금이 113억원, 총 2728억원 늘었다. 기준재정수요 충족도 항목을 자치구 실정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시 정책사업에 대한 자치영향평가는 상반기에만 4건이 상정됐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시행으로 늘어난 인력에 대한 인건비와 구립 50+센터 운영비, 도시경관개선사업비 지원 확대 등이다. 시 담당 부서에서는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지만 외부 전문가가 함께 논의하는 자치영향평가협의회에서 2017년 사업계획 수립때 자치구 의견을 반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치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3000㎡ 미만 공원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짓는 심의권한, 버스 중앙차로 정류소 흡연 단속권한 등을 위임하는 작업은 조례 개정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가 자치구에 일부 권한을 내려놓고 있다면 자치구는 구청장과 본청에 집중된 재정·권한을 동주민센터·주민과 나눈다. 은평구는 주민참여예산 가운데 동별 주요 사업 결정권을 주민들에 넘겼고 금천구는 올해 동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을 책정했다. 성북구는 마을민주주의 전담 부서까지 만들며 동네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방안을 찾고 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주민들에 맡기면 배가 산으로 갈 거라고 우려하지만 6년간 실험해보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항구로 가더라"며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쪽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고 재정운용도 투입대비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역 움직임에도 끄떡없는 중앙정부다. 유덕열 구청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방재정제도 개편안 역시 지방 재정을 먼저 확충하면서 동시에 지자체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양보를 요구해야 명분이 있다"며 "대통령이 결정하고 여당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주민 여러분~ 자치·분권 실상은 이렇습니다"
- [인터뷰│박원순 서울시장] "차기정부는 분권정부 돼야"
['지방자치 21년, 다시 분권을 말한다'연재기사]
- 서울시장-구청장 권한, 자치구-주민과 나눈다 2016-08-17
- 주민에 권한 주니 골목이 달라졌다 2016-08-24
- 주민 삶 바꾸는 지자체, 발목잡는 정부 2016-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