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1년, 다시 분권을 말한다

주민에 권한 주니 골목이 달라졌다

2016-08-24 10:21:28 게재

마을계획 만들고 주요 사업·예산 결정까지

주민참여에서 한발 더 나가 자치분권 활성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결합, 확산 전망

서울시가 취약계층 청년층에 지급하는 활동지원금 이른바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중앙정부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에 취업준비와 구직활동에 쓸 활동비를 지원하겠다는 지방정부에 '사전협의'를 이유로 딴지를 걸고 있다.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는 분권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내일신문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광역-기초간 분권과 협치를 선언한 서울시에 주목, 분권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 금천구 독산4동에 지난달 말 '골목길 물놀이장'이 들어섰다. 여느 자치구처럼 한강 지천변에 조성하거나 분수대를 가동한 물놀이터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아이들 '상상지도'를 현실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동네 종교기관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까지 부지를 마련했고 주민들은 물놀이장 계획부터 운영, 아이들 안전지킴이로 나섰다.

서울 지자체가 단체장과 공공기관에 쏠린 권한을 주민에 나눠주면서 골목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주민 참여에서 한발 나가 주민과 권한을 나누고 자치를 활성화, 행정 이론에 머물던 분권이 주민 생활과 지역을 바꾸는 장치로 가동되고 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규정이 '주민의 권리'로 구체화되는 셈이다.

독산4동 깜짝 물놀이장은 아이들이 지난해 그렸던 '상상지도'를 어른들이 실현한 것. 지난해부터 엄마들이 뭉쳐 놀이터에 비닐을 활용한 물놀이장을 선보였고 올해는 독산동성당에서 주차장을 주민 공유공간으로 내놓기로 하고 계단과 주차장 바닥공사까지 진행했다. 주민들은 수영장 청소와 수질관리는 물론 아이들 안전을 위해 매일 당번을 정해 지켰다. 소식을 전해들은 인근 지역에서도 독산4동 시설을 빌려 골목 물놀이터를 꾀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독산4동에서 주민들에 의한 마을변화가 시작됐다. 아이들 상상지도를 실현한 골목길 물놀이장에서 차성수 구청장이 하루 안전지킴이로 나서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금천구 제공

물놀이장은 금천에 부는 변화의 바람 중 일부에 불과하다. 구는 지난해까지 진행하던 동별 '주민과의 대화'를 올해부터 마을총회로 바꿨다. 주민들이 모임을 만들고 동네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논의, 총회에서 발표하고 토론한다. 주민자치위원은 마을 사업과 복지문제 해법을 고민하는 한편 자치회관 시설관리와 각종 강좌 기획을 담당한다. 구는 주민들이 머리를 맞댄 내용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동마다 2500만원씩 배정했다.

8363세대가 사는 독산4동에서는 지난해 말 66명이 마을계획단으로 참여, 역량강화교육 분과나눔 분과모임 등을 거친 뒤 지난 4월부터 마을의제를 발굴해왔다. 새로 이사온 주민을 초대하는 환영밥상, 양심주차를 유도하는 스티커, 쌀을 담아놓으면 어려운 이웃 누구든 가져가는 쌀뒤주 등은 그 결과물이다. 주민들이 움직이니 동주민센터와 구 부서도 긴장하고 선한 경쟁을 하게 됐다. 주민회의때 주차장 문제가 나오면 주차관리부서가, 쓰레기 문제를 얘기하면 청소행정과 공무원들이 참석한다.

은평구와 성북구도 비슷한 걸음을 하고 있다. 은평은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직접 쓰임새를 결정하는 참여예산사업을 구 정책사업과 동 지역사업으로 이분화했다. 동별 지역회의에서 협의, 4000만원 범위 내에서 사업을 추진하되 최종적으로는 최소한 1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주민총회에서 결정한다. 구 정책사업 예산도 2억원은 '청소년사업'으로 한정, 청소년총회에 결정권을 주었다. 동주민센터와 각 부서 공무원들은 법령 저촉이나 실행 가능성 여부 등 제안사업을 구체화하도록 상담 역할을 맡는다.

성북구는 지난해 길음1동과 월곡2동에서 시작한 마을총회 마을계획을 올해 초 동선동 종암동까지 확대한데 이어 성북동 삼선동 보문동 정릉2동에서도 시행할 구상이다. 전체 세대에 안내문을 배포해 무작위로 계획단을 모집, 주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심사하는 형태다. 성북구는 본청에는 마을민주주의과, 동주민센터에는 마을총회 전담반을 두는 등 조직 자체도 주민들에 맞췄다.

행정권력 이동은 주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높이고 권력 자체를 주민에 돌려주는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로 이어진다. 7월 현재 주민등록 인구가 49만4993명인 은평구에서 주민참여예산에 투표한 주민은 2014년 기준 4만4496명으로 10%에 근접한다. 13세 이상 인구 3%가 마을계획을 정하는데 참여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정한 성북구에서도 지난해 2.9%, 올해 3.9%가 참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실제 주민 체감도도 높다.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를 고민하다 통장이 됐다는 육연숙(48·금천구 독산4동)씨는 "상인·세입자들이 요즘은 골목 활성화를 위해 동네축제를 계획 중"이라며 "자녀교육에 목숨 거는 시대라지만 다같이 잘 살아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석연 동장은 "(행정)권력이 아래로 이동하고 공공예산을 주민과 함께 쓰면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주민 특히 한계상황에 있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분권을 통해) 시나 구 단위에서 채우기 어려운 행정편의를 체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문제로 동네를 떠났던 주민 가운데 금천으로 돌아와 공동주택을 짓고 함께 살겠다는 이들도 생겼다"며 "(주민에 맡기면) 늦게 가는 듯하지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몇몇 자치구에서 시작된 변화는 올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발맞춰 서울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주민센터는 자치구 업무지만 시에서 500명이 넘는 공무원을 채용해 지원, 복지나 행정서비스를 훨씬 더 정교하게 하고 주민들에 가까이 가게 만들었다"며 "협력에 의해 굉장히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인터뷰│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 '서울형 분권' 강남북 균형발전과 연결돼야
- 동주민센터 주민활동공간으로 변신

['지방자치 21년, 다시 분권을 말한다'연재기사]
- 서울시장-구청장 권한, 자치구-주민과 나눈다 2016-08-17
- 주민에 권한 주니 골목이 달라졌다 2016-08-24
- 주민 삶 바꾸는 지자체, 발목잡는 정부 2016-08/-31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김진명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