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1년, 다시 분권을 말한다
주민 삶 바꾸는 지자체, 발목잡는 정부
분권 강화한 헌법개정 요구에 … "박원순·안희정 대권경쟁 나서야" 주장도
서울시가 취약계층 청년층에 지급하는 활동지원금 이른바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중앙정부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에 취업준비와 구직활동에 쓸 활동비를 지원하겠다는 지방정부에 '사전협의'를 이유로 딴지를 걸고 있다.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는 분권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내일신문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광역-기초간 분권과 협치를 선언한 서울시에 주목, 분권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성신여대 환경미화원 54명은 올해 최저임금 6030원보다 1558원 많은 시급 7588원을 받고 있다. 인근 한성대 용역근로 10명 시급은 그보다 많은 7962원이다. 서울 성북구가 최저임금에 최소한의 문화·교육비용을 더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생활임금을 도입한지 2년만에 민간까지 확산됐다. 30일 결정된 성북구 내년 생활임금은 시급 8048원, 월 168만2000원으로 정부가 정한 2017년 최저 임금(시급 6470원)보다 24.3% 높다.
대학생 김 모(2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씨는 지난 2월 이재명 시장에 "시민장학생이 된 듯하다"며 편지를 띄웠다. 성남시가 만 24세 청년에 연 100만원까지 지급하는 '청년배당' 첫 수혜자가 된 뒤다. 그는 "시민 세금으로 받은 만큼 술 먹고 담배 사는 것은 하지 말자 생각했다"며 자격증 취득, 책 구입 등 계획을 밝혔다.
지자체발 생활밀착형 정책이 주민들 삶을 바꿔가고 있다. 다른 지자체 우수 정책을 지역실정에 맞게 보완·발전시키는 선의의 경쟁으로 지방자치 발전,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법제도 제·개정권한을 쥔 중앙정부에 번번이 막혀 고전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누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민선 5기 이후 가장 확장력을 가진 정책 가운데 하나는 생활임금이다. 2013년 성북구와 노원구를 시작으로 경기 부천시 등 기초지자체에서 노동자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2015년 광역지자체 가운데 서울시와 경기도가 받아들였다. 2014년 지방선거때는 야권에서 전국 공통공약으로 키웠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탈원전 분위기가 확산될 때 주민 생활과 연계시킨 주체도 지자체다. 박원순 시장이 2012년 보궐선거에서 '원전 1기 줄이기' 공약을 내걸고 에너지 소비도시 선두였던 서울에서 에너지 절약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전환을 선도했다. 자치구도 '에너지 자립마을'과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건 물론 여·야를 떠나 전국 45개 지자체 공동으로 '탈핵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시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의 에너지정책은 찜통더위에 전기요금 폭탄이 화두가 됐던 올 여름 특히 빛을 발했다.
'둥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해 상생방안을 고심한 건 성동구. '뜨는 동네' 성수동에 만족하지 않고 임대료 상승이 세입자 피해와 지역상권 침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수차례 당사자간 대화자리를 마련한데 이어 공무원들이 직접 건물주를 방문, 설득한 끝에 상생협약을 이끌어냈다. 서울시가 같은 조례를 제정, 서울 전역 확산을 주도했고 인천 광주 경기 등 전국 37개 지자체가 지방정부협의체를 꾸려 공동대응에 나섰다.
친환경 먹거리부터 공동체 회복까지 꾀하는 도시농업, 저출산 대책으로 시작된 공공산후조리원, 보호자 없는 병상을 실현한 안심병원, 귀갓길 안전을 지역사회가 책임지는 안심귀가서비스, 실질적 주거 소외계층에 혜택을 주는 임대주택 입주자 선정, 동주민센터와 복지·보건을 결합한 서대문…. 지자체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거나 중앙정부 부처에서 제도화한 정책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역으로 지자체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법률과 제도로 지자체 손발을 묶는 형태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법정 공방을 예고한 청년수당이 대표적이다. 수혜자와 그 가정에서도 호응을 보이고 있는데 사상 초유의 직권취소까지 단행, 정책 시행과 동시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중앙정부는 앞서 '사회보장협의제'를 명문화, 절차를 따르지 않고 사용한 예산만큼 지방교부세를 깎는다며 법률도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강제해 반발을 샀다.
지자체간 갈등을 키운 지방재정제도 개편안, 주민참여예산 주민참여를 제한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 지자체 재정 통제권을 기획재정부에 쥐어주는 재정건전화법안 등 지자체 권한을 도리어 축소시키는 움직임이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의는 특별·광역시 자치구와 의회를 없애는 '분권 과제'를 내놓기도 했다.
20대 국회 들어 지자체에 힘을 싣는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예 헌법을 바꿔 자치와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는다. 지방 4대 협의체와 분권운동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한 '분권형 개헌' 움직임이다. 이인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위원은 "지방자치법 지방재정법 등 개별 법률보다 헌법 개정이 파급효과가 크다"며 "지난해 헌법학회 용역으로 개정안을 마련, 시도별 순회토론회를 열어 주민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권을 대선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고 차기정부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분권과 협치를 실천해온 지방자치단체장이 대권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배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 공동대표는 "생활정치 자치분권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근본은 협치"라며 "(협치를 잘 해온)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년 대통령 후보경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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