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로 월급 126만원 … 살길 '막막'

2017-05-29 11:11:35 게재

청년고용 효과 없고 고령 근로자 임금만 깎여 … "정년과 임금 보장해야"

126만원. 금융공공기관에 다니는 A씨가 지난달 받은 월급이다. A씨는 올해 만 58세로 임금피크제에 들어갔다. 무기계약직인 A씨의 연봉은 6000만원이지만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올해부터 50%가 깎였다. 1년에 4번 성과급이 지급되는 달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126만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A씨는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문을 닫은 5개 은행 퇴직자 중 한명이다. 그는 2002년 비정규직으로 금융공공기관에 재취업했고 참여정부 당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서 연봉의 반이 줄었다. A씨와 비슷한 상황에서 입사한 다른 무기계약직들 중 일부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A씨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지방에 집을 둔 사람들은 월세조차 내기 빠듯한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2015년 11월 국립대병원 임금피크제 도입 강행에 반대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민주노총 제공


정년 60세 의무화와 함께 임금피크제가 확산되면서 A씨처럼 난감해하는 고령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 정년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줄어든 연봉에 생활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임금피크제에 걸리는 50대 중후반은 자녀 학자금과 결혼 비용 등으로 씀씀이가 가장 많은 시기다. 게다가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노년시기가 늘고 있으나 제대로 준비해 놓은 이들은 많지 않다. 당초 정년 연장을 추진했던 것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고 연령에 따른 고용차별을 없애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정부는 정년 60세 의무화의 전제 조건인 것처럼 임금피크제를 연계해 추진했다. 공공기관은 경영평가에 반영해 사실상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했고, 민간기업에겐 지원금 등으로 확산을 유도했다. 정년이 길어지면 신규채용이 더 어려워 청년고용 '절벽'이 우려되니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활용해 청년채용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가 내건 명분이었다.

실제 2016년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부터에 정년 60세 의무화가 도입된 것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율은 2014년 9.9%에서 2015년 12.1%로 2.2%p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작년에는 17.5%로 5.4%p 뛰어올랐다. 300인 이상 사업장만 떼어보면 증가율은 더 가파르다. 2014년 13.4%에서 2015년 24.7%로 11.3%p 늘었고, 지난해에는 46.8%로 1년새 22.1%나 급증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2015년 5월 정부 권고안이 나온 이후 전체 기관이 그 해말까지 도입을 완료했다.

◆작년 상생고용지원금 실적 5320명 그쳐 = 그러나 정부가 강조했던 청년고용 증대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지난해 늘어난 신규 정원이라고 정부가 밝힌 인원은 4400명 정도. 민간 분야에서의 청년고용 효과도 뚜렷하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작년 세대간 상생고용지원금을 받아간 기업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새로 뽑은 청년근로자는 5320명에 그쳤다. 당초 목표로 했던 1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 마저도 공공기관에서 뽑은 2000명이 포함된 수치다.

세대간 상생고용지원금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세대간 상생노력으로 청년 정규직을 신규 채용한 기업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청년 신규채용 1인당 중소기업은 연간 1080만원, 대기업과 공공기관에겐 540만원씩 2년간 지급한다.

지난해 정부는 상생고용지원금 예산으로 515억원을 책정했으나 집행된 건 180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4월까지 실적은 공공기관 1000명을 포함한 3182명으로 지난해보다는 증가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는 2년째 지급대상도 들어있어 올해 청년신규 채용인력은 이보다 적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세대간 상생고용지원금은 공모사업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리고도 신청을 하지 않은 기업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굳이 지원금 실적을 따져보지 않아도 악화될 대로 악화된 청년고용 현실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고용을 늘린다는 정부의 주장을 무색케 한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2015년 9.2%에 이어 지난해 9.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1월(8.6%)을 제외하고 2월 12.3%, 3월 11.3%, 4월 11.2% 등 두자릿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성과연봉제 이어 임금피크제도 폐지" = 사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할 때부터 청년고용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이 많았다. 세대간 숙련도와 구직선호 일자리 등이 달라 대체가능성이 낮다는 근거에서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연계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청년고용 창출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임금피크제로 기업의 여력은 생길지 몰라도 인력대비 업무량의 변화가 없어 굳이 신규인력을 뽑을 필요가 없다는 것.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정년 60세가 확실히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B씨는 "지난해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명문상으로 정년 60세가 보장되긴 했지만 그때까지 다닐 수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라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더라도 정년까지 다니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도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해 1000여명의 직원들을 솎아냈다.

임금피크제가 결국 기업들의 인건비 비용만 줄여주었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고용을 늘리겠다는 논리구조가 깨졌고 결과론적으로 효과도 없기때문에 폐지돼야 마땅하다"며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정년 연장과 임금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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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이경기 한남진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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