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제재, 제대로 될까?
에너지 의존도 높은 독일·오스트리아 등 반발 … 제재 실효성 약화될 듯
온라인매체 제로헷지는 8일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는 매우 크다"며 "미국의 제재안이 의도대로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에너지는 러시아 재정수입의 주요 원천이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지정학적 파워를 유지하는 도구"라며 "러시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러 제재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에너지를 무기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 에너지를 지정학적 완충재 삼아
2015년 기준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전체 나라는 에너지 수요의 53%를 외부에서 수입했다. 여기에는 원유 90%, 천연가스 66%가 포함돼 있다.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EU 전체 수입액의 20%가 에너지다.
개별적으로 일부 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크다. 대부분 유럽 나라들은 약 30% 이상 에너지를 외부에서 수입한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60% 이상 수입한다. 프랑스는 45% 정도다.
동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더 의존적이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는 대략 60~65%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불가리아 체코공화국 루마니아는 각각 37%, 32%, 17%에 그친다. 발트해 지역의 경우 리투아니아는 75%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라트비아는 45%, 에스토니아는 9%를 밖에서 사온다.
에너지를 대는 대표적인 나라는 러시아와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유럽 에너지 수요의 35%를 제공한다. 러시아는 약 40% 정도다.
유럽 밖에서 들여오는 에너지는 대부분 러시아산이다. 러시아는 불가리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핀란드가 필요한 석유와 천연가스 전체 수요 중 70% 이상을 댄다. 체코는 천연가스 62%, 석유 56%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폴란드는 천연가스 53%, 석유 90%를 러시아에서 구매한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높은 의존도는 러시아의 의도적인 조치다. 러시아의 핵심 안보이익은 위협적인 서유럽과의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할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옛 소련 시절에는 주변국을 침공하거나 점령하는 방식으로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소련이 아니다. 그만한 힘이 없다. 때문에 러시아는 자국의 풍부한 에너지를 경제적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 역시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은 지속적으로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려 노력해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최근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중장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LNG 수입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시설과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EU의 실질적 리더 역할을 하면서도 때로 서로 갈등한다. 이 두 나라를 보면 왜 러시아 에너지가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는 해외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지만 대부분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러시아가 아닌 알제리나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지에서 수입한다. 따라서 프랑스는 미국의 대 러시아 제제에 강력한 힘을 보탤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반면 독일은 다르다. 천연가스 수요의 57%, 원유 수요의 35%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따라서 안보 후원자인 미국과 에너지 제공자인 러시아 사이에서 긴장 넘치는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독일, 천연가스 57%·원유 35% 러시아에 의존
이 때문에 독일은 최근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에 대해 공개적이고 강력한 반대 의사를 보인 바 있다(내일신문 2017년 6월 19일자 12면 '가스관사업 알력 유럽-미국, 러시아 제재 공조 깨지나' 참조).
미국의 제재안은 러시아 에너지기업과 합작사업을 하는 그 어떤 나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러시아와 함께 발트해를 관통하는 '노르드 스트림 2 가스관 사업'을 진행중이다. 현재 독일로 수출되는 러시아 에너지 상당량이 우크라이나를 거친다. 하지만 노르드 스트림 2 사업이 완공되면 러시아와 알력을 빚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독일의 에너지 조달 안정성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물론 독일 역시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리비아나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독일은 4개의 국경 간 원유 송유관과 4개의 국내 송유관, 북해와 발트해에 3개의 원유 항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천연가스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LNG를 대규모로 수입할 시설도 없다. 이는 미국이 새로 수립한 러시아 제재안에 적극 동참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제로헷지는 "결국 노르드 스트림 2 사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독일의 에너지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접점"이라며 "독일은 안정적으로 새로운 천연가스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화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는 미국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독일과 러시아의 에너지 밀월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강력한 대러 제재안을 통과시킨 이유다. 하지만 제로헷지는 "미국이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는 러시아의 전략을 능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