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6자회담 한번 못한 북핵외교
외교부 평화교섭본부장 11년새 7명째 … 협상보다 '경력관리용 자리'로 전락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현실화 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졌다. 지난 10여년간 외교부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설치해 북핵 외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했지만, 역대 평화교섭본부장 대부분이 허무한 시간만 보냈다는 비판이 외교부 안팎에서 일고 있다.
2006년 4월 3년 기간의 한시 조직으로 출범한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북핵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5년 만인 2011년 정규조직으로 전환됐다. 차관급인 본부장은 6자회담 수석대표를 겸임하고 산하 두개 기획단의 보좌를 받는 외교부 내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지난 11년간 평화교섭본부장은 천영우, 김숙, 위성락, 조태용, 임성남, 황준국, 김홍균으로 바뀌며 7명째가 됐다. 하지만 본부장이 수석대표로 6자회담에 참석한 건 천영우 김숙 본부장 두 사람 뿐이다. 그 뒤 5명의 본부장은 6자회담을 한번도 하지 못한 6자회담 수석대표가 됐다. 그 8년 간 북한은 3차례의 추가 핵실험을 했지만 6자회담은 한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본부장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6개월 가량이지만, 개인 편차는 상당하다. 위성락 본부장이 2년8개월로 가장 긴 반면, 김숙 본부장은 10개월, 조태용 본부장은 11개월에 그쳤다.
외교부 한 고위 당국자는 "중요한 일을 하라고 평화교섭본부장 자리를 만들었지만 대부분 자리값을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아무 것도 안 돌아가는 차관급 조직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 여론도 있다"고 말했다.
교섭본부의 이런 무기력증은 "직접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23일 발언과 한참 거리가 있다.
물론, 지난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보수적 성향과 미국의 대북 태도 등이 장애물로 작용한 점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외교부 다른 당국자는 "본부장이 분명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역할을 해보겠다고 하면 북핵외교에서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다"면서 2009년 2월 취임한 위성락 본부장의 사례를 들었다.
2009년 말 보즈워스 주한미국 대사가 평양을 방문해 미북간 접촉을 했지만 성과없이 결렬됐다. 이듬해인 2010년에 천안함 폭침도발이 발생했다.
위 본부장은 이를 계기로 한국이 북한을 먼저 접촉하고 미국이 그 뒤를 따르는 6자회담 재개 방안으로 미국을 설득했고, 이명박정부 청와대와 치열한 협의 끝에 2011년 7월 북한 리용호 외무성부상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최초의 남북간 비핵화협상을 벌였다. 이는 1차 미북협상-2차 남북협상-2차 및 3차 미북협상으로 이어져 결국 2012년 2월 29일 미북간 2.29합의가 타결되는 단초가 됐다.
위 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2차 남북협상을 앞두고 주러시아 대사로 내정됐지만 발령을 미루기도 했다.
앞의 외교부 당국자는 "평화교섭본부장 자리를 외교안보 라인 고위직으로 가는 경력관리용으로만 인식하는 게 큰 문제"라면서 "일 중심으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본부장 임기를 3년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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