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재활의 길을 찾다│②자신을 찾아 길 위에 선 아이들
걷기 통한 변화로 새로운 삶 꿈꾼다
통제·수용 대신 자아성찰로 교정 … EBS 다큐멘터리 '나를 찾아 떠나는 길'
#1. 바퀴 달린 것이라면 다 좋아한다는 A군은 직접 운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를 훔쳤다. 훔친 자동차로 곳곳을 질주하며 절도행각을 벌였다. 이제 겨우 열다섯인 B군은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처음으로 입건된 후 폭행과 절도죄로 보호시설을 들락거렸다. 오랫동안 유도와 검도를 배웠다는 C군은 기물파손과 폭행죄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합의금으로 물어준 돈만도 1억원이 넘는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는 말하는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은 20박 21일간 산을 올랐다. 휴대전화, 게임, 음악, 인터넷 등 평소 일상을 지배하던 모든 것이 금지됐다. 수시로 찾아오는 유혹을 견디고 정신과 체력의 한계를 넘나들며 하루 평균 10∼15km를 걸었다.
#2. 폭행죄로 벌써 3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는 D군과 여성 산악인 남난희씨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지리산 둘레길 275km 종주에 도전했다. 한 겨울. 하루 평균 20km를 걸어도 보름 가까이 걸리는 길이다. 혼자 걷고 싶다며 앞장서던 D군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남씨는 소년이 그동안 만났던 다른 어른들처럼 혼을 내거나 일장연설을 늘어놓지 않았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주변의 모든 것을 튕겨내는 소년에게 지쳐 남씨가 중도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늘 센 척하던 D군이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D군과 그 길을 묵묵히 기다려주며 먼저 손을 내밀었던 남씨, 두 사람은 21일 간의 동행 끝에 맨 처음 출발했던 길로 돌아왔다. 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두 사람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보호시설이나 소년원에 가두는 것은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사회와 단절된 채 비숫한 아이들과 어울리던 아이들은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가도 적응이 쉽지 않다. 실제로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들의 절반 이상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그곳에 돌아간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나섰다. 어른들이 찾은 대안은 선진국들에서 오래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장기 산행과 숲 체험 프로젝트가 도입됐다. 통제와 수용, 외적 강제에 치우쳤던 교정 패러다임을 '자아 성찰'로 전환한 것이다.
어른들은 출발 6개월 전부터 법무부의 협조를 받아 2번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고 현재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청소년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했다. 전문산악인과 의료진, 심리상담사 등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아이들의 산행에 동행을 약속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걷기 프로젝트에는 총 7명의 아이들이 참가했고 그 중 4명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바퀴를 좋아해 자동차를 훔쳤던 A군은 지방의 한 대학 자동차학과에 입학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학과 공부에 열중이다. B군은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해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C군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도 도장에 다니고 있다. 아직 뭘 할지 진로를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욱하는 성격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건축가가 꿈인 D군은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암 투병 중인 엄마를 제 힘으로 모시고 살기 위해 잠시 꿈을 접고 대신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변화는 어른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남난희씨는 D군과 같은 처지의 의정부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남씨 외에도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아이들의 성장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란 제목의 EBS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2016년도 한국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작인 이 다큐멘터리는 총 3부작으로 2월 8일에는 1부 '방황과 방향 사이' 15일에는 2부 '치유의 길, 동행' 22일에는 3부 '혼자 걷다'를 방송한다. 방송 시간은 사흘 모두 오후 7시 50분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석재 PD는 "단 한 번의 여정으로 아이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을 시설에, 소년원에 가두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걸을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걷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그것은 앞으로 이 아이들이 살아갈 기나긴 여정에서 한번쯤 방향을 전환하는 이정표가 되어줄 지도 모를 일"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선진국에선 위기청소년 '걷기 프로그램' 운영
['위기청소년 재활의 길을 찾다' 연재기사]
▶ ①구멍뚫린 교정·교화 프로그램│ 보호관찰 청소년 재범률 성인 2배 2018-02-01
▶ ②자신을 찾아 길 위에 선 아이들│ 걷기 통한 변화로 새로운 삶 꿈꾼다 2018-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