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기후금융시대 | ②세계는 '탈석탄' 투자 모드

보수적인 금융권도 화석연료에 등 돌렸다

2019-08-01 11:52:49 게재

수익성 하락, 리스크 자산 취급 … 세계 최대 연기금도 손떼

선진국은 물론 몽골도 민간금융 자발적 참여 … 한국 뒤처져

세계 금융기관들의 '탈석탄'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연기금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운용자산 1조달러)가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사업투자 철회를 선언함에 따라 금융시장은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HSBC, 알리안츠, 소프트뱅크 등 금융기관들은 물론이고,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BHP조차 탄소 배출 문제 해결을 위해 5년간 약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한국전력 등을 투자 금지 기업으로 선정했고, 앞으로도 이런 기업들이 더 나타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박형건 녹색기후기금(GCF) 금융기관팀장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몽골은 특이하게도 민간영역인 은행연합회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녹색금융시장을 형성, 국제 사회에서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며 "필리핀, 캄보디아 등도 몽골을 벤치마킹하며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뒤처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GCF는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금융기구다.

한국의 해외석탄 투자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11일 미국 오일체인지인터내셜(Oil Change International), 지구의 벗 미국(Friends of Earth US) 등 환경단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일정에 맞춰 백악관 앞에서 한국 해외석탄 투자를 규탄하는 시위 장면. 사진 기후솔루션 제공


◆노르웨이의회, 법적으로 탈석탄 투자 원칙 세워 = 6월 13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가디언은 노르웨이 의회가 8개 석탄회사와 150개 석유생산국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 위한 기금 계획을 법률로 의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투자 회수 계획은 약 60억달러로 추정되는 규모의 석탄 투자를 중단한다는 의미다. 또한 석유 탐사 및 생산 회사들에 대한 약 7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투자 회수 대상에는 광업 회사인 앵글로 아메리칸, 글렌코어와 독일 에너지 회사인 RWE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석유회사라도 청정에너지 기술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지분을 보유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6월 발표 당시 제닛 버건 KLP 책임투자본부장은 "이번 결정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며 "재생가능에너지와 저장장치 용량 관련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석유와 가스 부문에 대한 투자가 더는 매력적이지 않게 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KLP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개인연금 펀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이 같은 탈석탄 투자 움직임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2015년 매출액이나 전력 생산량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석탄 생산이 연간 2000만t을 초과하거나 석탄 발전량이 10GW를 초과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밝힌 적도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2017년 한국전력을 투자 금지 기업으로 지정했다.

◆'파슬 프리 캠페인'에 1000여 곳 참여 = 사실 탈석탄 금융 흐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뤄져왔다. 석탄발전 등 화석연료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파슬 프리 캠페인(Fossil Free Campaign)'에 전 세계 1000여개 기관(6월 현재)이 참여 중이다. 총 자산 규모만 8조7200억달러에 달한다.

UNEP FI(금융 이니셔티브)는 민관협력체계인 PDC(Portfolio Decarbonization Coalition)를 구축해 금융사들이 탈석탄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UNEP FI는 UN산하 UNEP과 금융회사간 협력기구로 지속가능금융(ESG투자) 촉진을 위해 1992년 설립됐다. 씨티은행, 바클레이즈 은행, HSBC, 도이치뱅크, 중국 공상은행 등이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 팀장은 "과거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여겨지던 석탄이 요즘에는 리스크 자산으로 전락했다"며 "고객이 개발하는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사들 특성상 화석연료 관련 사업에 투자를 철회하는 현상은 당연하고, 전 세계 큰 금융사들은 대부분 이런 흐름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에너지원의 생산성 향상, 환경 오염원이라는 부정적 인식, 탄소가격 반영 등으로 석탄발전이 예전만큼 투자 가치가 없는 것. 세계 1위 보험사인 뮌헨 리가 '보험을 인수할 때 고객을 가리지 않는다'는 회사 원칙을 버리고 석탄발전소에 대한 보험 인수를 중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뮌헨 리는 수익의 30% 이상을 석탄 관련 사업에서 내는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에 신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국내 금융권 반응은 '미온적' = 국내에선 지난해 10월 공무원연금공단과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이 금융권으로서는 처음으로 탈석탄 투자를 선언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권에 탈석탄 투자 흐름이 얼마나 빨리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국내 최대 기금인 국민연금의 경우 화석연료 투자 규모가 2017년말 기준 석탄 화력 발전 투자규모가 2조5911억원이고, 지난해 역시 3조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3분기에 2018년 세부포트폴리오를 공시한다고 밝혔다.

은행권 역시 탈석탄 금융에 미온적이다. 국내 유일의 GCF이행기구인 KDB산업은행조차 석탄발전에 대한 전면적인 투자 철회 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정부의 전원개발계획에 따라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추가 석탄 발전소 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규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사업 지원의 경우에도 OECD가이드라인, 적도원칙 국제기준을 준수하여 환경·사회 영향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국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금융 지원을 결정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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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백만호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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