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팀 버클리 글로벌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 국장
"탄소배출량 따라 투자이동, 한국 새 기회 잡아야"
연기금, 보험사도 자본회수 위험
제조업상징 GE 몰락, 잊지 말아야
"노르웨이 국부펀드 움직임에 세계 투자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 Rock)과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 운용사인 벵가드 그룹까지 자동적으로 수동형(패시브) 자금의 비중을 탄소를 적게 뿜어내는 회사에 둔다면, 탄소 고배출 기업에 투자된 자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도는 굉장히 빨라질 겁니다."
팀 버클리(Tim Buckley) 글로벌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IEEFA) 국장(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팀 버클리 국장은 25년간 주식평가 등 금융 시장에 몸을 담고 있다. 팀 버클리 국장과의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탈석탄' 투자 선언이 국제 금융 시장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 투자자들 사이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나.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실제로 주식 매각이나 투자 회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조달러 규모의 기금이 움직일 때 당연히 세계는 주목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다른 국제 금융 리더들은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추세다.
유럽의 큰 투자자들은 이미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게다가 블랙록이 단호하게 이러한 정책을 원한다면 좌초자산(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을 보유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8조8000억달러 자산을 관리하는 펀드 1100개가 있다. 문제는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탄소 배출량이 높은 회사들이 좌초자산으로 전락하고 시장은 공항상태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은 더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달 23일 세계 최대 광산 업체인 호주 BHP의 앤드류 매켄지 최고경영자(CEO)가 영국 런던의 한 조찬 모임에서 회사 운영이나 자체 자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5년간 4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탄 생산이 연간 2000만t을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회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 있는 Arthur 탄광 및 콜롬비아의 세레존(Cerrejon) 탄광에서 BHP가 생산하는 석탄 양은 연간 2800만t이다. 때문에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 회수 대상에 명확하게 속한다. 그러나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투자와 투자 회수를 위한 원칙(프레임워크)을 이미 공표했다. 만약 BHP가 이러한 정책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다면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당장 투자를 회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 블랙록과 같은 기관이 투자시 기후리스크를 고려한다면 분명 기업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나.
석탄화력발전을 소유하고 있거나 관련 사업을 하는 두산 한국전력 포스코 등은 투자회수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좌초자산에 투자를 한 한국의 연기금과 보험회사들이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와 '녹색금융협의체(NGFS)'는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이러한 위험을 무시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한 예로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40년간 새로운 석탄발전소를 짓고 소유한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좌초자산 실현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말할 수 있다. 상승 중인 탄소배출권 가격이 빠르면 2년에서, 늦어도 10년 안에는 석탄화력발전 투자 가격에 반영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GE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010년에만 해도 GE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하지만 최근 3년새 주식 가치는 2/3 토막이 났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이러한 재정적 위험을 빠른 속도로 체감하고 있다.
■ 한국금융기관이 녹색금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한국은 이미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운영 중이다. 게다가 석탄세도 매기고 있다. 그만큼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아직도 탈석탄 정책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을 따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10년간 아시아 전역의 석탄 발전소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전환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석탄발전 투자 자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자산 보유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 당장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기존의 전문 지식과 사업 영역을 새로운 성장기회로 전환할 능력이 한국은 충분히 있다. 2030년까지 아시아 해상 풍력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술역량이 필요하지만 대규모 금융 지식과 지원이 더 중요하다.
한국의 한화는 세계 최대의 태양 전지 제조업체 중 하나다. 삼성SDI는 세계 유수의 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거대한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는 이러한 기회를 파악하고 좌초자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녹색금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녹색투자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영국과 호주는 중앙 정부 주도로 녹색투자은행이 설립됐다. 독일(KfW)과 브라질(BNDES: 브라질 국영 경제·사회개발은행), 뉴욕은 주 단위의 녹색투자은행이 에너지전환을 주도하는 핵심 요소였다.
■ 종전과 다른 경영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점 때문에 기업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녹색금융은 새로운 금융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녹색금융은 에너지와 운송 분야의 급속한 변화로부터 화석연료 회사의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고 평가할지에 주목한다.
재생가능에너지 인프라는 연간 1조달러의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향후 25년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은 핵심 기회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녹색채권 발행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고 총 가치는 약 50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발행한 녹색채권은 약 1670억 달러다. 글로벌 채권 금리는 수십년 만에 최저 2~3% 수준이며 글로벌 연금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 대안을 찾고 있다. 기대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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