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경영컨설팅기업)'는 어떻게 중산층을 파괴했나
예일대 마코비츠 교수 "경영 엘리트화 주도"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가 미국 중산층 파괴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능력주의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 우리나라에선 '엘리트 세습'이란 제목으로 출간 예정)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는 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최신호 기고에서 미국의 기업 문화와 경영컨설팅 간의 함수관계를 통해 미국 중산층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피트 부티지지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부티지지는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를 지냈다. 그의 학력은 훌륭하다. 고교 졸업생 대표였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로즈장학생으로 선정돼 영국 옥스퍼드대를 다녔다. 그는 두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 문학사를 전공했다. 물론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 명함만으로 어떤 직장도 갈 만했다. 하지만 경영엔 관심이 없다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맥킨지에 몸을 담았다.
마코비츠 교수는 "부티지지의 행보는 이례적인 게 아니다"라며 "일류대학 최고 성적의 졸업생들은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기 전 으레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사에 잠시나마 적을 둔다"고 지적했다.
엘리트의 필수코스가 된 경영컨설턴트. 이 과정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마코비츠 교수의 주장이다. 그같은 관행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경영컨설턴트의 등장이 미국 기업 조직과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그는 "경제적 불평등과 미국 중산층 파괴의 중심에 경영컨설턴트가 있다"며 "민주당 진보파 또는 좌파들이, 대통령을 꿈꾸는 멋있고 유능한 젊은 정치인에 왜 그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지 설명하는 답이기도 하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경영컨설턴트는 회사 경영 기법에 대해 경영진에 자문을 제공한다. 맥킨지만 해도 전 세계 100대 기업 중 90곳에 경영컨설팅을 해준다. 경영자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자를 편성하고 조정한다. 복잡한 상품과 서비스는 많은 계획과 조정이 필요하다. 경영진은 생산을 직접 담당하지 않지만, 편성과 조정 과정에서 많은 가치를 더한다. 그리고 그 가치의 많은 몫을 보수로 가져간다. 때문에 누가 경영자가 되느냐가 극도로 중요해진다.
20세기 중반 미국 기업엔 많은 경영진이 있었다. 모든 노동자, 즉 CEO뿐 아니라 중간 관리자에서 말단 생산직까지 부분적이나마 경영자로 기능했다. 사업계획이나 업무조정에 참여했다. 기업 내 각각의 업무는 이웃 업무와 유사한, 끊김없는 연속체로 이해됐다. 정교하게 층을 이룬 중간 관리자는 장기근속자와 함께 생산을 조정했다. 그 결과 기업들은 노동자에게 승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IBM에서 40년 근속한 노동자는 근속기간의 10%(4년) 이상 기간에 회사가 제공하는 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 기간 보수를 전액 지급받았다.
20세기 중반 민간 부문 노동자의 1/3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조는 한 기업의 하위 계층 노동자들도 경영 통제 과정에 포함시켰다. 미 대법원은 1960년 판결에서 이를 '산업노동자의 자주관리'(industrial self-government)라 칭하기도 했다.
생산직 노동자는 종신고용과 현장교육 덕분에 기능적으로 볼 때 가장 낮은 수준의 경영자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는 것을 계획하고 조정하면서 고용주의 장기적 이해관계에 봉사할 책임이 주어졌다.
20세기 중반 기업의 노동현장 훈련과 계층제는 사장이 되는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편물 정리에서 시작해 사장이 되기까지'(from the mail room to the corner office)라는 속담은 당시의 현실을 포착한 말이었다. 가장 하찮은 일자리라도 승진의 기회가 주어졌다. 1939년 식료품 체인기업 세이프웨이(Safeway)에서 승진한 부서장 가운데 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매점 계산대 잔돈 정리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맥도날드사의 전 CEO 에드 렌시는 1960년대 햄버거 패티를 굽는 일부터 시작했다. 1952년 포춘지 보도를 보면 당시 최고 경영진의 2/3는 20년 이상 같은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기업의 중간 간부들은 최고 경영진과 독립적으로 생산에 대한 계획을 짜고 조정할 수 있었다. 이들은 책임뿐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는 데서 오는 수익과 사회적 지위도 공유했다. 최고경영자들은 중간 관리자의 입지를 인정해 통제 여지를 줬다. 최고경영자들은 지금과 달리 낮은 보수를 받았다. 경영에 대한 민주적 접근은 소득과 지위의 배분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20세기 중반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39년에서 1950년까지 GM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은 최고경영진 보수의 상승률보다 3배 높았다. 경영적 기능이 기업 노동자 전반에 광범위하게 분산되면서 실질적으로 20세기 중반 미국 중산층을 건설한 주요 요인이 됐다.
GM 보고서를 보면 당시 맥킨지와 기타 경영컨설팅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소소했다. 초기 경영컨설턴트는 엔지니어들이었다. 공장 소유주에게 효율성을 측정하고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당시 업계 선두였던 '부즈앨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연매출 200만달러가 안됐다. 맥킨지는 1953년까지 하버드대 MBA 출신을 고용하지 않았다. 당시 맥킨지는 소심한 전통을 갖고 있었다. 자사 컨설턴트에게 중절모를 쓸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더 이상 중절모를 쓰지 않자 관련 규정을 없앴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맥킨지가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1965년과 이듬해 맥킨지는 뉴욕타임스와 타임지에 대대적인 구인광고를 냈다. 광고를 통해 입사 응모자를 불러모은 뒤 퇴짜를 놓았다. 자사의 엘리트주의를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맥킨지의 경쟁자들도 뒤를 따랐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창립자 브루스 핸더슨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학생신문에 구인광고를 내면서 '평범한 사람은 안된다. 상위 5%에 해당하는 로즈장학생과 마셜장학생, 베이커장학생만 뽑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70년 뉴욕타임스매거진 기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이익 증가'에서 주주우선주의를 기업의 새로운 이상으로 천명했다. 경영컨설팅사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제시된 것. 미국 200대 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도 "경영진과 이사회는 기업 주주에게 지상최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하며 주주우선주의를 채택했다.
이런 움직임은 1970년대 시작돼 80년대와 90년대 가속화됐다. 경영컨설팅기업들은 주주우선주의를 실현하는 여러 방법을 고안했다. 대표적으로 20세기 중반부터 기업 경영과정에 대대적으로 참여한 중간 관리자들의 힘을 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때문에 중간 관리자 보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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