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 창설 70주년 - 미국 유엔사 내세워 남북화해 찬물
불편한 존재 유엔사 … 근원적 해법 모색할 때 됐다
과도한 권한이 주권침해 … '유엔사 해체' 요구 점점 커져
올해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유엔군은 생명의 은인이자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인지 유엔사에 대한 언급이나 문제제기는 늘 금기시 돼 왔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까지 겸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엔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배은망덕한 행위나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유엔사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엔사라는 이름과 깃발을 쓰고 있지만 유엔의 기구도 아니고 지원도 받지 않는다. 유엔총회에서 해체결의안이 통과된 적도 있다. 유엔깃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제운동도 벌어져 한때 주한미군 부대에서 유엔군 깃발을 내리기도 했다. 형식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우리는 직접 당사자다. 유엔사의 과도한 간섭은 남북화해국면에서 사사건건 걸림돌로 작용했다. 영토주권과 군사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토주권 침해는 우리 땅을 우리가 맘대로 오가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현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군사주권과 관련해서도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되더라도 유엔사 재활성화를 통해 전작권 환수가 사실상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유엔사가 정전관리권한은 가지면서 대한민국의 헌법상 의무는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무장지대라는 광활한 지역에 대한 점령권을 행사하는 데도 그로 인한 국민 권한의 침해가 발생할 때 어떤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은 이를 근거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유엔사는 유엔과 무관하며 유엔 산하 기구가 아니다 △유엔은 유엔헌장과 유엔깃발법을 위반하는 유엔사의 유엔기 사용을 금지하라 △유엔은 미국에 1975년 유엔사 해체 결의의 이행을 촉구하라 △미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방해하는 유엔사를 해체하라 △미국은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를 해체하고, 유엔사를 통한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시도를 중지하라 △한국 정부는 유엔사 해체를 미국과 유엔에 공식 요구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국회·지자체도 월권 논란 =시민사회단체만이 아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지난달 10일부터 임진각 평화누리에 임시집무실을 설치하고 유엔사의 횡포에 맞서고 있다. 그는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민통선 내에 있는 도라전망대에 집무실 설치를 추진했지만 유엔사에 가로막혔다. 관할 군부대는 '조건부 동의'를 했지만 약속한 날짜 하루 전인 9일 유엔사 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 부지사는 매일 통일대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15일에는 통일대교 남단부터 북단까지 0.9km를 삼보일배로 건너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관련 내용을 소개하며 "겨우 315배 해놓고 몸이 욱씬거린다면 다 제 탓입니다.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폐쇄된 평화의 길이 다시 열린다면 매일이라도 315배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전해철 의원은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DMZ(비무장지대) 출입 허가 문제에 대해 질의했다. 전 의원은 유엔사의 관할권은 정전협정 제1조 제7항부터 제9항에 따른 것인데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DMZ와 MDL(군사분계선) 출입, 통과에 대한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허가 범위다. 유엔사가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군사적 성격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전한 것 역시 군사지휘권에 불과하기에 그 이후 계속돼 온 유엔사의 허가권 역시 군사적 성격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 전 의원의 지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적 성격'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전 의원 설명이다. 그동안에는 비군사적 목적의 출입에 대해 유엔사가 출입을 불허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시간이 갈수록 비군사적 목적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한 화해모드가 본격화된 2018년 이후 유엔사 간섭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비군사적 목적의 출입을 제한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남북철도 경의선 북측구간 현지조사 통행 신청 불허(2018.8) △민화협 새해맞이 행사 취재장비 반출 요구 불허(2019.2) △통일부 차관 등 한독 통일자문위 고성 GP 방문 신청 불허(2019.6) △통일부 장관 대성동 마을 방문 신청, 기자단 출입 불허(2019.8) △2019년 10월 전국체전 100회 기념 공동경비구역 성화 봉송 불허 등이 대표적이다.
전 의원은 이 같은 사례를 들며 2018년 이전에는 유엔사가 비군사적 목적의 출입을 불허해 문제가 된 사례가 없었는데 새 유엔사 사령관 취임 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불허가되는 사례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런 유엔사의 허가권 행사가 정전협정에서 부여한 목적에 부합하는지, 특히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전협정의 본래 취지 그리고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간 합의, 'DMZ 평화의 길' 민간개방 등 평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합리적으로 행사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우리정부는 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북 공동등재 등 DMZ 평화적 이용사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DMZ 우리 측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 산림 등 다양한 분야의 실태를 조사하는데 주력하고 있어 유엔사의 평화적 방문에 대한 불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원활한 사업 추진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정부도 조금씩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그동안 유엔사의 월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모습에서 적극적인 입장개진으로 바뀌었다. 국정감사 기간을 전후해 유엔사 허가권 범위에 대한 통일부와 국방부의 유권해석이 공개됐다. 전 의원이 공개한 유권해석에 따르면 통일부는 '정전협정에서는 유엔사의 권한에 대해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유엔사의 남북교류협력사업 관련 DMZ/MDL 통과 거부는 정전협정 취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국방부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정전협정 서언에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면서도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DMZ 출입 및 MDL 통과 등에 대한 승인권한을 보유하고 있다고 국방부는 해석했다.
전 의원은 "유엔사의 승인권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하다면 순전히 군사적인 성질에 해당하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우리 정부의 통지만으로 완료된다"면서 "유엔사의 허가승인 등을 요구하지 않는 신고제로 운용될 수 있도록 유엔사와 협의하고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사를 둘러싼 법적 공방 = 유엔사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법적 문제점도 안고 있다. 11월 27일 대한적십자사와 대한국제법학회는 '한국전쟁 70주년과 국제인도법적 과제'를 주제로 제39회 국제인도법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는 'UN군사령부와 한반도평화의 국제법적 문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당초 유엔사 설치와 관련해 UN 안보리는 "북한군과의 작전 과정에서(in the course of operations against North Korean forces) 필요에 따라" UN의 깃발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통합군(a unified command)에 부여하고, 지휘권은 미국이 행사하도록 위임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UN 안보리 결의 제88호에 의해 유엔사로 명명된 통합군을 중심으로 UN과 미국 사이에 UN이 본인이며 미국은 대리인이라는 본인(principal)-대리인(agent)의 법률관계가 형성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7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관계다.
최 교수는 현재 UN은 유엔사의 UN 보조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하게 부정하고 있으며, UN은 유엔사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하지도 않고 예산도 배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무력공격과 이에 대한 한국의 방어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정전상태에서 유엔사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UN의 깃발을 사용하면서 한반도 내에서 미국에 의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UN은 유엔사를 UN과 무관한 기관으로 간주해 유엔사의 행위는 UN의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데, 미국은 UN이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는 군사기관에 대해 UN의 깃발과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본인으로서 UN사를 지휘·운영하여 미국이 곧 UN 본인이라는 부조리한 법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2014년부터 진행된 미국의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은 한반도 유사시 추가적인 UN안보리의 결의 없는 군사개입, 일본과 사전협의 없는 일본 내 유엔군 후방사령부 활용, 한반도내 미국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영향력 지속 행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유엔사의 역할 확대를 내용으로 한다. 이는 정전협정 이후 유엔사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평화조성(peace making) 활동을 통해 남북 당사자 간의 평화적 대화 환경조성을 하기 위한 임시기능(stop-gap)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본질적 성격을 망각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이처럼 유엔사가 한국정부와 국민의 주권을 제한하고, 영토 일부에 대한 주권박탈이라는 국제법적 문제를 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활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모순과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유엔사의 해체"라고 단언했다.
그는 "유엔사 해체는 법적으로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의 문제와 무관하다"면서 "DMZ의 관할권을 환수함으로써 한반도가 한국정부의 유효한 관할권이 행사되는 지역으로서 DMZ 남측, 명목적 관할권이 행사되는 지역으로서 DMZ 북측, 그리고 관할권이 행사되지 않는 국제적 지역으로서 DMZ로 나누어져 있는 상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남북의 주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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