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법 개정안, 플랫폼 과도규제 논란
"플랫폼업체 고의·과실 있어야만 연대책임"
IT업계 "과도한 규제로 디지털 경제 후퇴" 반발
공정위 "엄격한 전제조건, 소비자 후생도 중요"
하지만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보면 플랫폼이 자신을 계약당사자로 오인하게 하거나, 거래과정에서 고의나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연대책임을 지우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가 플랫폼산업이나 혁신성장을 명분으로 소비자에 대한 책임까지 외면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온라인 중간거래상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바뀐 온라인유통시장에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5일부터 40일간 입법예고했다. 전자상거래법은 지난 2002년 온라인몰과 홈쇼핑 등 통신판매 중심거래에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제정됐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플랫폼을 중심으로 대형화한 시장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IT 업계 강력 반발 = 네이버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입점업체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며 정부의 과도한 플랫폼산업 규제에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의 규제가 '디지털 경제의 후퇴'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소비자 보호는커녕 천편일률적 규제로 디지털경제를 퇴행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를 들면 네이버 쇼핑에 입점한 업체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 네이버 등 플랫폼 운영사업자와 해당 입점업체가 연대해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도 단순 중개기능을 넘어 광고 게재, 청약접수, 대금 수령, 결제대행, 배송대행, 청약철회 접수, 대금환급 등 플랫폼 사업자의 거래 관여도에 따라 연대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일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인기협은 "이번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전자상거래법 제정 취지와 규율 범위를 초과한다"며 "엄격한 요건에 따라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할 '영업의 정지' 등 행정행위를 공정위의 일방적 의심이나 우려에 따라 명할 수 있도록 한 임시중지명령 제도의 완화(안 제64조) 등 법체계상 문제점도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과실 있어야 연대책임 = 하지만 공정위는 인기협 등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플랫폼의 연대책임에는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붙어 있고, 덩치가 커진 만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플랫폼기업이 소비자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알리지 않았으면 손해배상 책임 일부를 져야 한다. 그동안 플랫폼업체들은 '거래중개만 했다'고 표기만 하면 입점업체에 소비자 불만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떠넘겨왔다.
또 플랫폼이 대금결제 등 중요 업무 과정에서 고의나 과실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만 연대책임을 묻는다. 이 조건에 해당하면, 소비자들은 플랫폼업체와 입점업체 양쪽에 분쟁조정이나 피해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직접 업무인 결제·대금수령·환불에서 생긴 피해까지 입점 업체에 따져야 했던 문제도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간 접수된 피해 구제 신청 6만9452건 가운데 네이버·쿠팡·카카오·11번가 등 주요 9개 온라인플랫폼사업자와 관련된 분쟁만 1만947건(15.7%)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는 선택적 배상청구를 할 수 있고, 입점업체도 피해 책임을 플랫폼과 나눠지게 돼 양쪽 모두 더 두텁게 보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색노출·상품평 조작도 규제 = 플랫폼업체의 '특정상품 띄우기' 논란이 컸던 우선 검색 노출 기준과 후기게시판도 운영 방식을 공개해야 한다. '깜깜이식' 노출 기준 탓에 그간 소비자들은 광고상품을 순수 인기 상품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기 게시판도 광고글과 진짜 후기글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국법제원이 발표한 지난 2019년 '전자상거래 소비자인식 실태조사'를 보면, 소비자 50.2%가 '이용후기에 속아서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거래에서 소비자 피해가 큰 사건이 진행될 경우, 법원이 판매나 광고를 즉시 중단하도록 명령하는 '임시중지명령' 발동요건도 완화했다. 현재는 재산상 손해 발생이 요건의 하나지만, 개정안은 '명백한 법 위반 의심'만으로 법원이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중고거래 피해가 많았던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을 개인간(C2C) 온라인플랫폼으로 보고 소비자 보호 조처도 마련했다. 개인 간 거래 플랫폼에서 가짜거래나 정당한 환불거부 등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면, 플랫폼 사업작가 판매자의 신원정보 제공 등 피해구제에 협조하도록 의무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