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온 아짓 쿠마르의 편지

"한국 같은 나라 없습니다"

2021-03-30 11:33:58 게재

임금 못 받고 귀국, 29개월 뒤 해결 … "노력해준 한국인에 감사"

"조금만 기다리면 나올 테니 못 받은 월급과 퇴직금을 받고 가라" "고향에 홍수가 나서 가족이 다 죽게 생겼어요. 아들이 전염병에 걸렸다고요"

외국인 노동자 아짓 쿠마르는 한국에서 받지 못한 월급과 퇴직금을 두고 2018년 7월 고국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음속으로는 돈을 포기했다.

저는 대한민국 천안에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하던 회사가 어려워져서 퇴직금과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월급과 퇴직금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저는 월급과 퇴직금을 잊고 지냈습니다.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2년 5개월이 지나서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20km 떨어진 은행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입금된 돈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자리에 주저앉아 기도했습니다. 이 돈을 저에게 보내주기까지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외국인이 포기하고 돌아간 월급과 퇴직금을 2년 5개월 후에 보내줍니까? 정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오늘 저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 것입니다. 저는 잔치 주최자로 마을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칭송하는 말을 할 것입니다. 스리랑카 갈리 넬루이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아짓 쿠마르 올림


한국을 잊고 있던 쿠마르가 꿈같은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받은 건 그가 떠난 뒤 2년 4개월이 지난 2020년 11월이었다.

임금을 체불한 회사가 매각되면서 부동산 가압류를 해제하기 위해 그동안 못 준 임금과 퇴직금을 지불하려 한다는 천안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의 알림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쿠마르는 한국 앞으로 감사의 편지(사진)를 보내왔다.

스리랑카 아짓 쿠마르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보내온 가족사진. 2018년 본국으로 돌아간 후 둘째가 태어났다. 사진 법률구조공단 제공

◆기계 공장에서 4년 노동 = 아짓 쿠마르는 2014년부터 2018년 2월까지 충남 천안에 있는 한 기계장비 제조 공장에서 일했다. 마지막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임금과 퇴직금 1453만원을 받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쿠마르는 체납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노동자지원센터는 임금을 받는 방법을 알려줬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회사 부동산에 가압류도 걸었다.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아 법원의 이행권고결정문도 확보했다. 이런 과정을 밟아 체불임금 일부를 보증보험을 통해 200만원, 소액체당금으로 400만원을 받았다. 체당금은 노동자 생계보장을 위해 체불임금 소송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노동자에게 국가가 체불 임금과 휴업수당, 퇴직금을 최대 1000만원까지 지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머지 임금과 퇴직금도 다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쿠마르의 고향 갈리 넬루이(Galle neluwe)에 큰 물난리가 났다. 스리랑카는 고온다습해 홍수가 나면 전염병이 퍼진다. 쿠마르의 아들도 병에 걸렸다.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길 고대했다. 못 받은 돈을 받을 것인가. 임금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쿠마르는 눈물을 흘리며 스리랑카로 갔다.

"가족 걱정 때문에 쿠마르가 흘리는 눈물을 보는 순간 체불 임금은 나중이고 먼저 고향에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황유진 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그때를 떠올렸다. 쿠마르와 노동자지원센터는 법률구조공단 천안출장소에에 모든 것을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썼다.

◆남은 체불 임금 800여만 원 = 예기치 않던 희소식이 들려왔다. 회생절차를 밟던 회사가 팔리면서 묶여있는 부동산 가압류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쿠마르의 밀린 돈을 받는 게 먼저였다.

"부동산 가압류를 풀려면 나머지 체불 임금을 먼저 송금해야 한다고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도 동의해 쿠마르가 돈을 받을 스리랑카 은행 계좌를 확인해 주었다"고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이정례 법률구조공단 계장은 말했다. 이 계장은 "한국어 서류를 보내고, 페이스북 영상 통화와 문자로 의견을 나누고 메일을 주고 받는 등 노력했지만 의사소통하는 게 힘들었다"고 밝혔다. 간단한 통역은 노동자지원센터 담당자가 맡아주었고 서류 작성은 스리랑카인 사미르씨가 도왔다. 올해 1월 쿠마르는 기대치 않던 체불 임금을 받고 고마운 마음에 편지를 써서 페이스북으로 보내왔다. 노동자지원센터는 그 글을 법률지원공단 홈페이지에 '칭찬합니다'로 올려 세상에 알렸다.

노동자지원센터 황태선 팀장은 "요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불 사례가 많은데 보통은 돈을 다 받지 못한다"며 "부동산가압류를 해두고 끝까지 약속을 지킨 사람들이 있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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