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설비투자 열풍, 이제 막 시작"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연율로 15% 상승중이다. 기계와 공장 등 하드웨어는 물론 무형의 소프트웨어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다. 전세계 기업들 역시 지출을 늘리고 있다. 기업투자 전망이 이처럼 장밋빛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모간스탠리가 '시뻘겋게 달궈진 설비투자 순환기'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 은행에 따르면 2022년 말 글로벌 기업투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의 12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컨설팅기업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설비투자에 호황이 일어나기에 적당한 때"라고 말했고, 리서치기업 IHS마킷은 "올해 글로벌 실질 고정투자가 6% 이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낙관론은 팬데믹 이전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변화다. 미국 기업의 GDP 대비 국내총투자는 1980년대초부터 둔화세였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투자가 실질 기준에서 이전의 정점을 회복하는 데엔 2년 이상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기업투자가 급감했지만 재빨리 반등하고 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2006년 이후 S&P500 기업들의 실적발표를 분석한 결과 상위 25대 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 예상치는 지난해 대비 10% 이상 상승했다.
물론 투자 회복세는 몇몇 산업에 집중돼 있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는 2019년 대비 42%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향후 5년 동안 4300억달러를 투자한다. 이전 계획안보다 20% 늘려 잡았다. 세계 최고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는 향후 3년 동안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설비투자를 45% 늘린 삼성전자가 올해도 13%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
기술기업들의 설비투자 붐은 일정 부분 팬데믹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요에 기인한다. 전세계적으로 원격근무나 재택근무 비중이 상승하고 있다. 이같은 전환을 자연스럽게 하려면 새로운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니콜라스 블룸 교수와 시카고대 스티븐 데이비스, 율리아 제스트코바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 관련 기술의 특허신청 비중이 크게 늘었다. 스위스 은행 UBS는 상용 목적의 컴퓨터 주문이 올해 10% 가까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기업들에 한정된 건 아니다. 재량소비지출에 의존하는 S&P500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설비투자액은 전년 동기대비 36% 늘었다. 미국 소매유통기업 타깃과 월마트는 시장점유율을 잠식하는 온라인 유통기업에 맞서기 위해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영국 소매유통기업 마크&스펜서는 최근 아이슬란드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이르기까지 해외 시장 46곳에서 신규 웹사이트를 열었다.
다른 소매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가계지출이 늘어나면서 이를 따라잡으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 소파에서 온수욕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초 실내자전거 유통기업인 펠로톤은 대만산 제품의 수송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는 최근 운수송 병목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컨테이너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대한 글로벌 주문은 지난해 10월 현행 선박수 대비 9%에서 지난달 15% 이상으로 늘었다.
여기서 드는 중대한 의문은 이같은 설비투자 붐이 2010년대와는 달리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전환 흐름이냐, 아니면 단지 주요국 경제가 기지개를 펴는 데 따른 일시적인 반등이냐는 것. 일단 모든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는 건 아니다. S&P500 기업의 약 절반은 2019년 대비 올해 투자액에 별다른 변동이 없다.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들은 오히려 팬데믹 이전 대비 설비투자를 10% 정도 줄이고 있다. 기후변화 대처 요구에 글로벌 수요가 낮아질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항공여객기업들도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재개하는 건 당분간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 낙관론이 우세하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전했다. 일단 경제적 조건이 2010년대 초와 달라졌기 때문에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지갑을 열 것이라는 것. 또 금융위기 직후와 달리 가계들 역시 억눌린 지출 수요를 해소할 저축이 많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각국이 보다 단호하고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을 쓰면서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도 역대급이다.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0년 미국 투자등급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은 사상최고치인 1조7000억달러에 달했다. 2019년 1조1000억달러에서 크게 올랐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촉발된 생산기지 이전과 그에 따른 투자가 당분간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또 반도체로 대표되는 특정 산업계는 팬데믹에 돌입한 이후 너무 적은 여유능력을 갖고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때문에 향후 수년 동안 거대한 투자 프로젝트로 이를 보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가장 중요한 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더 거대한 기술 낙관주의의 시대로 안내했다는 점"이라며 "백신개발 업체는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새로운 사업모델을 도입한 기업들이 탄탄한 실적을 올리는 것을 보며, 각 기업 경영자들은 투자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점을 새겼을 것이다. 기업투자 붐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