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 아닌 제조업 주도 경제 원해

2021-08-05 11:49:53 게재

WSJ "선진국 탈산업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서구 투자자들이 보기에 알리바바와 텐센트, 디디추싱 등 슈퍼스타 기업들에 대한 중국정부의 규제 탄압은 자해행위와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술기업들을 무릎 꿇리고서 경제성장을 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시진핑 주석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전자상거래, 기타 소비자 대상 인터넷기업들을 갖고 있으면 좋다. 하지만 시 주석의 관점에서 국가적 위대함은 그룹채팅이나 차량공유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중국은 서구 선진국들의 탈산업화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인터넷이 아닌 제조업 주도 경제를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정부는 최신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민항기, 이동통신 장비와 관련된 기술에 심혈을 기울인다. 제조업 위상을 세우기 위해, 탈산업화를 막기 위해, 외국 주도 공급망에서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중국정부는 소비자 대상 인터넷기업들에 다방면에 걸친 규제폭탄을 던지면서도 제조업체들에겐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공산당 기관지 '치우시'(求是)를 통해 공개된 연설에서 온라인경제가 활황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선순위의 비중을 정리했다. 그는 "중국은 디지털경제와 디지털사회, 디지털정부의 구축을 가속화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실물경제는 그 기반으로서 다양한 제조업 산업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경제발전 단계를 보면, 제조업이 농업을 도태시키고 나면 서비스가 제조업을 넘어선다. 최근 수십년 동안 대부분 선진국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가치 비중이 하락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국과 영국의 제조업 공장들은 일제히 해외로 이전했다. 특히 중국이 그 종착지였다.

중국 역시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하락했다. 하지만 26% 수준으로 그 어떤 주요국보다 비중이 크다. 중국정부는 제조업 비중을 지키려 한다. 선진국들의 탈산업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다.

중국 전문 리서치기업인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테크 애널리스트인 댄 왕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중국은 영국과 같을 수 없다. 영국은 TV와 저널리즘, 금융, 대학교육 등과 같은 산업에서 굉장히 성공했다. 반면 연구개발 집중도에서 비중이 하락했고, 대기업들이 글로벌 입지를 잃었다"고 말했다.

전세계 정치인들은 제조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제조업은 경쟁이 극심하다. 따라서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하지만 지배적인 플랫폼을 구축한 소비자 대상 인터넷기업들은 최소한의 투자로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인다. 일자리 창출 규모가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절반에 불과한 페이스북이 시가총액 측면에선 11배 높은 이유다. 또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이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기업 '중신궈지'(SMIC)보다 수십배 높은 이유다.

하지만 중국정부 입장에서 소비자 대상 인터넷기업들은 시가총액엔 반영되지 않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앤트그룹과 같은 기업들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온라인 교육기업들은 적자생존과 관련한 사회적 불안감을 자극한다. 중국 관영매체가 최근 지적한 대로 중국정부는 텐센트 등이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을 '정신적 아편'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제조업의 경우 시가총액이 반영하지 않는 사회적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제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했고 생산성을 높였고, 필수 기술과 노하우를 나라 곳곳에 전파했다. 이제 중국 지도부는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각종 보조금 지급, 보호정책 구사, 기술이전 강제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미국정부도 이에 동조할 수 있다. 미국정부 역시 빅테크가 공정한 경쟁을 목조르고,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가짜뉴스를 전파하고, 온라인 중독증세를 부채질한다고 우려한다. 미국 역시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기술 제조업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할 태세를 갖추면서 중국을 모방하려 한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자본 할당과 관련해선 뒷자석에 앉아 있다. 중국정부는 그 반대로 운전석에 타고 있다.

WSJ는 "물론 이는 중국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국가주도 개발에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산업계 자본할당은 중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할 여지가 많을 때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제 중국이 서구 선진국들을 속속 따라잡으면서 자본할당의 성과가 급감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 산업계는 종종 과잉자본과 부채로 골머리를 앓는다. 게다가 중국 내수시장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모조리 흡수할 수 없다. 과잉생산은 수출로 해결돼야 한다. WSJ는 "중국은 GDP 대비 제조업 가치 비중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타국들에게 더 적은 제조업 비중을 강요하면서 종종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정부의 제조업 우선순위가 장기적으로 합리적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중국증시의 혼란을 보면 정부가 한 기업의 미래를 단기적으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최근 "중국은 대다수 인민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자본주의를 운영한다"며 "자본주의자들은 중국 체제 내에서 자신이 종속적 위치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실수를 저지르면 그에 따른 결과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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