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쇼크' 50년 … 표류하는 각국 통화
닛케이아시아 "변동환율제 이후 잦은 통화위기 … 달러패권 대체 움직임 활발"
하지만 변동환율제는 종종 신흥국 통화위기를 일으킨다.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통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달러에 기반한 기축통화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미래의 통화는 글로벌 경제에 어떤 충격을 미치게 될까.
고정에서 변동으로
'닛케이아시아' 최신호에 따르면 2차대전 후 고정환율제에서 엔화는 1달러당 360엔에 고정됐다. 1973년 변동환율제로 완전히 전환된 이후 일본 엔화가치는 달러 대비 상승했다. 1985년 달러강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플라자합의가 마련된 이후 엔화는 3배 이상 올라 1달러당 100엔이 됐다.
엔화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금융자산으로 여겨진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엔화는 전후 최고치인 1달러당 75.32엔에 달했다.
현대적 의미의 통화는 금으로 태환될 수 있다는 사실로 신뢰를 얻었다. 전후 국제통화시스템 역시 미국이 언제든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에 기반했다. 하지만 1960년대와 70년대 미국의 공공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베트남전쟁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대량의 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결국 금 부족과 인플레이션 상황을 맞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금과 달러의 태환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면서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닉슨 쇼크에 이어 변동환율제 시대가 도래했다. 즉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시대가 시작됐다. 금과의 태환을 중단하면서 각국은 유통화폐량을 더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통화정책 운용 여지도 늘어났다. 하지만 갑작스런 자본유출입이 잦아졌다.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기 쉬워지면서 통화위기를 낳거나 물가의 격한 출렁임을 일으켰다.
달러페그제에 대한 회의감
많은 신흥국들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금리를 조정하면서 달러에 연동된 고정환율제를 유지한다. 이 나라들의 목표는 환율 출렁임을 억제하면서 해외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이 달러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종종 국내경제적 조건과 상충되기도 한다. 중국이 통제력을 강화하는 홍콩은 달러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일각에선 조만간 이 제도가 폐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달러는 전세계 기축통화이기에 변동환율제를 취한 나라들의 통화는 미국의 통화정책과 외교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올릴 때 미국으로 자본은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를 내거나 외환보유액이 불충분한 나라들은 위기시 통화가치의 급락을 겪곤 한다.
2018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 터키 리라화는 급락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한 것과 맞물리면서다. 터키뿐 아니라 다른 신흥국 통화들 역시 동반 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연준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조만간 이런 흐름이 반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흥국 통화가 다시 한번 동반 약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화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전세계 각국은 자국 통화를 금으로 태환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금보유량 이상의 통화를 발행할 수 있었다. 유통통화를 늘리면 경제를 더 쉽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수요의 증가가 부풀어오른 통화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잉여자금을 활용한 투기거래로 위기가 악화됐다.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기 쉬워지면서 자본의 갑작스런 유출입이 잦아졌다. 1980~90년대 중남미에서는 통화위기가 잦았다. 멕시코 페소위기가 대표적이다. 1997년엔 태국 바트화의 붕괴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태국은 신흥 산업국가로서의 높은 기대감 덕분에 국제자본이 급격히 유입됐다. 하지만 경제구조는 여전히 취약했다. 바트화 가치가 과도평가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섰다. 자본유출 때문에 태국 경제는 급격히 위축됐다. 그리고 바트화 위기는 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전이됐다.
기축통화의 모순
기축통화인 달러는 무역과 금융거래의 핵심이다. 달러의 신뢰가 흔들린다면 글로벌 경제는 큰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에게도 모순적 대상이다. 즉 양날의 칼이다.
달러를 전세계에 공급하려면 미국은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달러의 공급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달러의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모순을 처음 지적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 '트리핀 딜레마'로 불린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지출계획은 경상수지 적자를 대폭 늘릴 전망이다. 달러 신뢰는 더 하락할 수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향후 달러가치가 급격히 추락할 수 있다며 우려한다.
통화시스템의 미래
미래의 통화는 어떤 모습일까. 관건은 달러패권 지속 여부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초 초국가적 통화를 제안했다.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영국을 대표한 케인스는 초국가적 통화 '방코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회의는 전후 통화프레임을 설정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 제안을 반대했다. 국제통화시스템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체제로 결정됐다.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직후 글로벌 경제는 오일파동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국가가 통화주조를 독점하는 한 물가상승과 부의 불균형한 분배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는 비국가 행위자도 자유롭게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통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 유럽의 공동화폐인 유로화가 탄생했다. 유로화 지폐는 2002년부터 유통됐고 유럽 국가들의 개별 통화는 사라졌다.
달러패권을 넘어 다극적 통화체제를 주장한 건 UC버클리대 교수인 배리 아이켄그린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양적완화를 도입해 경제회복을 꾀한 첫번째 국가중 하나였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기축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건 '과도한 특권'이라고 지적했다. 환율걱정 없이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정책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재정적자를 통제할 수 없다면 이런 특권을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다양한 통화가 각축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2019년 초국가적 디지털통화 '리브라'를 발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정 국가의 통화에 연계된 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법정통화와 연계되는 통화 개념이었다. 하지만 많은 국가의 규제당국이 이를 반대하면서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포기했다. 대신 페이스북은 올해 말 달러에 연동된 디엠을 발급할 계획이다.
2019년 당시 영국중앙은행 총재 마크 카니는 달러패권이 글로벌 경제 안정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세계 중앙은행장과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달러에 의존하는 통화시스템의 위험성'을 설파했다. 그는 "각국이 협력해 달러에 대항하기 위한 디지털 기축통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지난해 디지털위안화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내년 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도입한 뒤 공식 발행할 계획이다.
엘살바도르 대통령 나입 부켈레는 다음달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첫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자유로운 자본거래를 가능케 한 통화체제는 글로벌 경제를 보다 발전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보다 취약하게도 만들었다"며 "최근 디지털통화의 확산으로 새로운 통화체제 가능성이 보다 현실화됐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하지만 통화정책의 신뢰와 돈의 본성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국제적 토론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달러 이외의 통화들이 전세계 국가의 경제적 미래를 바꿀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