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 이재호 교사(강원 양양고등학교)
때로 '사회'가 우리를 속일지라도…
3학년 7반과 함께 한 '실용국어' 이야기
특성화계 아이들에게 '실용'적인 국어란 무엇일까. 종합고인 강원 양양고는 3학년 7개 학급 중 7반이 특성화계 아이들이다.
이 반 아이들과 한 학기를 함께할 과목은 '실용국어'다. 어떻게 보면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나갈 아이들에게 '문학'은 비실용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문학을 통해 삶을 지탱할 힘을 얻기를 바랐다.
핵심적인 성취 기준을 중심으로 문학을 통해 '일'과 '부조리' '삶'에 대해 다뤄보는 수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만우절에 아이들과 원격수업으로 만났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조금 들떠있었고 오늘 수업 시간에는 무얼 할지 궁금해했다.
'열여덟살의 자기소개'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 글을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읽었다. 글을 쓴 아이는 초등학교 때 별명이 '날으는 돈까스'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큰 덩치를 자랑스러워했다. 마이스터고에 입학한 이유는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드디어 저는 고3이 되었고 그해 가을에 CJ그룹 입사가 결정됐습니다"라는 문장부터 아이들 대신 내가 직접 읽어내려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은 신입사원 연수, 이후 CJ 진천공장에서 보낸 겨울 이야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함께 읽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 걸, 나는 왜 시발, 살아있어서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하죠? 회식 자리에 이끌려와 강제로 술 마시면서 노래 부르고 춤춰야 하고…. 내가 뭘 잘못해서 엎드려뻗치고 신발로 머리 밟히고 까이고 당해야 하나요."
아이는 담임선생님께 회사에서 겪은 부조리한 일에 관해 알리려 하고 있었다. 폭행당한 사실을 인사과에서 알게 되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선생님 저 무서워요'라는 말을 남긴 후 아이는 투신했다. 담임선생님이 '걱정하지 마, 네 뒤에 샘이 있잖아'라고 보낸 답장을 끝내 읽지 못했다.
은 유 작가가 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부분까지 읽고 나자 정적이 흘렀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던 아이들은 실제 사건에 대해 검색해본 후 채팅장에 분노를 담은 열변을 토해냈다.
지원이는 앞으로 어떤 회사에 취업하느냐에 따라 자신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내용이라 무섭다고 했다. 자영이는 암묵적으로 이 '폭력'에 적응하기를 유도하는 사회의 모습에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고 적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친구는 모든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적었다. J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발하고 회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왜 동준이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는가?'였다. 이 수업시간에 배운 가장 '실용적'인 것은 회사는 얼마든지 내가 원하면 그만둘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수업을 마치면서 아이들에게 회사는 그만둘지언정 내 삶을 그만두지는 말자고 말했다.
실습에 나가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이나 회사가 있으면 국민청원에 고발하겠다고 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7반 담임선생님은 걱정을 하셨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조리에 맞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러다 아이들이 일터에 있는 모든 시간은 불행하다고만 느끼게 되지는 않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소설이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중고거래 앱을 운영하는 IT기업 사원인 안나는 카드회사에 다니는 'ID: 거북이알'이 자꾸만 새 물건 수십개를 판매하자 사장의 지시로 거북이알을 만나러 간다. 카드회사에 다니는 거북이알은 회장의 갑질로 1년간 월급을 카드사 포인트로 받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포인트로 새 제품을 구매하고 이를 다시 중고거래로 판매해 현금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거북이알은 안나가 게시물 끌어올리기 기능을 기획해 사용자들의 편의를 높여준 것에 대해 칭찬을 했다."
일이 마냥 슬픈 것은 아니란다
안나는 피아니스트를 좋아해서 공연을 보러 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나만의 기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적어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아이유 덕질'을 하거나 떡볶이를 먹으며 기쁨을 찾을 거라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회사의 프로젝트를 하나 망쳐버리면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당황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시현이가 그 아쉬움을 풀어주는 글을 써주었다.
"소설을 읽으며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직장인이 된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설레었다. 일에 몰두하는 안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앞으로 배울 것이 있다면 경청하고 공감하는 직원이 되고 싶다."
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만을 배우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현이가 균형을 맞춰주었다. 일 밖에서만 기쁨을 찾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을 느끼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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