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공정을 외치다 │② 상장기업 매각, 소외된 소액주주들

'경영권 프리미엄' 소액주주도 받으면 주식가치 50% 상승

2022-01-07 10:48:08 게재

M&A과정에 대주주와 소액주주 지분가치 불평등 … 한샘 인수한 'IMM PE' 유사 사례 잇따라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식투자 1000만명 시대'를 열었지만 투자자 권리보호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를 처벌하는 자본시장법이 존재하지만, 소액주주인 개인투자자들이 당하는 차별과 피해를 막는 제도적 장치는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상장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자본시장의 단골 이슈가 됐다. 대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명목으로 현재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 보다 평균 50% 이상 높은 금액을 받고 지분을 매각하는 반면, 시장가격으로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소액주주의 지분 가치는 대주주에 비해 훨씬 낮아지면서 불평등한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샘 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한 것과 관련해 2대 주주를 비롯해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샘 대주주인 조창걸 회장 일가는 회사 보유 지분 27.7%를 매각하면서 100%가 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대 주주인 테톤 캐피탈 파트너스 엘피 펀드(지분 9.23% 보유)와 국민연금(8.43%), 소액주주(25.47%) 등은 지분이 43.13%에 달하지만 합병 과정에서 배제됐다. 오히려 지배구조 변동 리스크로 인해 주가는 11만원대에서 8만원대로 하락해 손실을 입었다.

테톤 캐피탈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사회는 이러한 매각이 회사 및 전체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에 관한 심의 없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며 "떠나는 지배주주와 남아있는 소액주주간의 이해상충이 있음에도 이사회는 회사의 자산을 지배주주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전유토록 지원한 것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2017년 경제개혁연대는 과거 M&A 사례 분석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와 같은 경영 프리미엄을 얻었다면 주식가치가 평균 48.95% 증가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7일 임진성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3월 한샘의 정기 주주총회에 대비해 빠르면 내달 주주제안을 할 것 같다"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업 가치를 올리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주주가 받은 경영 프리미엄을 소액주주가 비례적으로 향유하자는 주장은 현행법과 법원의 판례상 인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거나 주주환원정책을 촉구하는 것이 현재 여건에서 실행 가능한 조치다. 한샘은 자사주 비중이 26.7%로 높아서 경영권을 인수한 IMM PE가 자사주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테톤 캐피탈은 임시주총 당시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포함한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잠재적인 편취 우려 해소와 주식가치 재평가를 위해 기존 자사주 26.7% 소각 필요 △효율적인 자산배분 △합리적인 배당정책 △모범적 기업지배구조헌장의 채택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소액주주 지분 헐값 매수 논란 = 상장사 M&A는 단순히 대주주의 경영 프리미엄 취득에 그치지 않고 인수자에 의해 소액주주들의 지분이 헐값에 매수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IMM PE는 2015년 태림페이퍼 지배 지분을 인수한 이후 자사주 공개매수 등을 통해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상장폐지 이후에도 버틴 일부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주당 3600원에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했다. 주주들은 법원에 주식매수가액결정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적정 주식매수가액이 주당 1만3261원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IMM PE는 화장품 전문업체 에이블씨엔씨의 지배주주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후 2017년 소액주주 지분 60.21%에 대해 주당 2만9500원에 공개매수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주주 지분을 주당 4만3636원에 인수한 것과는 차이가 컸다. IMM PE의 지분 인수는 지배력 강화를 통해 다른 주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콜마파마 대주주로부터 지분 62.10%를 인수한 IMM PE는 지난해 IMM PE의 신설법인인 제뉴원사이언스가 콜마파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기 위해 콜마파마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교부금 방식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실행했다. IMM PE는 지배주주 지분을 주당 9426원에 인수했지만 소액주주에게 제시한 교부금은 주당 8000원에 불과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시 소액주주 주식가치 올라 =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에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 등 주요 국가에서 시행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의무공개매수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지배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프리미엄을 주고 매입하는 경우 소액주주들의 주식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격으로 인수제의를 강제'하는 제도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017년 4건의 주요 M&A 사례를 분석해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의 주식가치가 얼마나 상승하는지 분석했다.

KB의 현대증권 인수, 미래에셋그룹의 대우증권 인수, 금호기업의 금호산업 인수, 한화그룹의 삼성테크윈 인수 등 4건을 분석한 결과 인수자가 회사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총인수대금을 사용해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들의 모든 주식을 동일한 가격으로 매입했다면 소액주주들의 주식가치는 평균 48.95%(분석대상 4개 회사 평균)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사례를 보면 KB금융지주는 2016년 현대상선 등이 보유한 현대증권 주식을 매입했다. 당시 지배주주로부터 지분 22.56%를 주당 2만3182원에 샀지만 이후 현대증권 자사주 7.06%를 주당 6410원에 매입했다. 이후 완전자회사를 위해 KB금융지주와 현대증권 간 주식교환을 추진했다. 현대증권 주식 교환가격은 주당 6766원. 주식교환에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당 6737원에 주식매수청구권이 부여됐다. 소액주주들이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인 주당 2만3182원에 지분을 매각했다면 2조7335억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주주는 경영을 하면서 온갖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지분을 팔고 나갈 때까지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들과 비교해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얻은 이익은 전 세계 1위"라고 말했다.

그는 "지배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면서 거액의 경영 프리미엄을 챙길 경우 계열사 주주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단일 회사의 불공정 문제가 아니라 다른 회사 주주들의 불공정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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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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