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기술, 생산성 왜 못 끌어올리나

2022-05-27 10:52:35 게재

NYT "경제 전반에 미치는 성과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아" … 범용성 여부가 관건

지난 수년 간 미국 경제계엔 철석같은 믿음이 있었다. 클라우드컴퓨팅이나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미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덕분에 벤처 자금조달과 기업투자가 신기술에 쏟아졌다. 생산성 증대를 예견한 이들은 신기술의 성과가 거대 기술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하지만 그런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생산성은 노동시간당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로 정의된다. 미 노동통계국(BLS)이 이달 발표한 올 1분기 미국의 생산성은 급격히 하락했다. 전분기 대비 7.6% 하락했다. 분기별 수치로는 1947년 3분기 11.7% 감소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0.6% 하락했다.

NYT는 "물론 생산성 분기별 수치는 변동이 심하다. 하지만 BLS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면서 생산성 회복이 마침내 이뤄지게 됐다는 기존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라고 전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생산성 성장률은 연간 약 1% 정도다. 2010년 이후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에서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마지막 시기는 1996~2004년이었다. 당시 연 3% 이상 생산성이 상승했다.

경제성장은 두 축으로 이뤄진다. 한 축은 자본과 노동을 많이 투입하는 것 또 다른 한 축은 혁신을 창조하고 상업화하는 한 나라의 기술이다. 이는 투입된 자본과 노동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외견상으로 생산성이 조금이라도 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나라의 부와 생활수준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맥킨지앤드컴퍼니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씩 생산성이 늘어날 경우 미국인 1인당 소득은 연간 3500달러씩을 추가로 보탤 수 있다. 1948년에서 1972년까지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은 연 평균 3.8%였다. 미국 전후 경제번영의 주요 엔진이었다.

물론 생산성이 경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클린턴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UC버클리대 하스경영대학원 교수 로라 타이슨은 "디지털 경제를 구동하는 신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생산성 증가로 정당성을 입증 받는다고 해도 그로 인한 혜택이 경제 전반에 골고루 배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산성 낮은 경제는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함께 지적돼야 한다.

현재 국면의 생산성 난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쟁 주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J. 고든은 신기술 회의론의 대표주자다. 그는 "오늘날 인공지능은 방대한 분량의 단어와 이미지, 숫자를 쏟아내지만 주로 패턴인식 기술에 머물러 있다"며 "인공지능의 위업은 인상적이지만 과거 전기와 내연기관엔진처럼 변혁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 소장인 에릭 브린욜프슨은 신기술 낙관론의 대표주자다. 그 역시 신기술에 따른 생산성 성장이 아직 명백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문제라고 확신한다. 브린욜프슨 소장은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혁의 파고가 진행 중"이라며 "우리는 현장에서 그를 뒷받침하는 더 많은 사실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성 난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수년이 흘러야 한다. 브린욜프슨 소장과 고든 교수는 지난해 '2020년 1분기부터 2029년 4분기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생산성 성장률이 1.8%를 넘을지' 여부를 놓고 400달러 내기를 걸었다. 낙관론이 맞을지 회의론이 맞을지는 2029년 말 결정된다.

지난 수년 동안 디지털 기술에 대거 투자한 기업들은 주로 대기업들이나 고속성장하는 기술기업들이다. 클라우드컴퓨팅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보급됐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같은 가장 진보한 기술은 아직 보급률이 낮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제한적 보급이 현 단계에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미국 기업의 3/4이 종업원 10명 미만의 소형 규모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의료보험기업 앤섬은 4500만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데, 고객 문의의 약 75%를 웹포털이나 모바일앱,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채널로 처리한다. 3년 전 디지털 비중은 약 30%였지만 두배 이상 늘렸다. 고객의 질문은 대개 보험금 신청이나 청구서 결제, 의사 찾기 등이다. 어느 정도 인공지능 자동화로 처리 가능하다.

앤섬의 디지털플랫폼 대표 라지브 로난키에 따르면 콜센터에서 디지털 자동화로 처리하는 전화문의는 약 1000만통화다. 그럼에도 앤섬은 고객서비스 직원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신 역할과 실적 측정방식을 바꿨다. 과거엔 고객 문의를 취급하는 시간으로 실적을 따졌다. 콜 당 처리시간이 적을수록 실적이 더 좋았다. 고객 문제를 해당 부서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콜센터 직원이 가능한 경우 직접 고객 문제를 해결하고 이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받는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직무 교육을 새로 받았다.

로난키 대표는 "콜센터 직원들의 생산성이 30~40% 늘어났다. 직업훈련을 시키고 직무를 재설계하는 것은 기술을 개선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며 "기술적 능력을 구축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이 확산되고 사람들이 그 기술을 최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1880년대 도입된 전기모터는 1920년대가 돼서야 본격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대량생산 조립라인이 등장하면서 전기모터 기술과 관련한 직무를 재설계하면서다.

개인용 컴퓨터(PC) 혁명은 1980년대 시작됐다. 그에 따른 경제적 생산성 향상은 1990년대 후반이 돼서야 가능했다. PC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성능은 좋아지면서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의 생산성 증대는 기업과 벤처투자자들이 기술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가능했다. 특히 인터넷과 웹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리서치기업 IDC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소프트웨어 지출이 두배 넘게 늘어 3850억달러에 달했다"며 "기업들이 업무를 속속 디지털화하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전세계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에 대한 벤처투자액은 지난해 80% 이상 늘어 1150억달러에 달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크레스타는 생산성 향상 문제를 연구중이다. 2020년 첫 상품을 출시했다. 콜센터 직원을 위한 실시간 추천과 코칭 소프트웨어다. 이 상품은 고객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문자와 음성 대화를 학습한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판매 관련 문의에 답변한다.

크레스타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자이드 에남은 "이 소프트웨어의 목적은 노동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최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성능과 속도가 크게 발전하면서 상품 출시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판도를 바꾸는'(game changing)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200명의 직원을 보유한 크레스타는 벤처투자자들로부터 1억500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 버라이즌과 콕스 커뮤니케이션, 포르쉐 등 수십곳의 기업 고객을 두고 있다.

미국 최대 중고차 매매기업인 카맥스는 지난해 12월 크레스타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시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고차에 대한 고객들의 문의는 길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중고차의 수명은 연식과 차모델, 특징, 주행이력 등에 따라 각기 다르다. 또 중고차 구입을 위한 금융 방법도 다양하다. 카맥스 전략마케팅상품 부사장인 짐 리스키는 "고객 질문의 범위는 사실상 무제한"이라며 "순수하게 자동화된 의사소통은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의 복잡성을 정리하는 동시에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팅의 도움은 매력적이었다. 크레스타는 처음 카맥스의 고객센터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고객들과 문자로 의사소통하는 업무를 맡은 직원들과 함께 인공지능 실시간 채팅 실험을 시작했다.

리스키 부사장은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응답시간이나 판매 권유 등과 관련해 약 10% 생산성이 개선됐다"며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직원의 숫자는 200명에 달한다.

그는 "한가지 걱정은 직원들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응할지였다"며 "혹시 직원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게 아닐까 우려했지만 직원들은 인공지능을 조력자로 반기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크레스타가 초기 시장으로 고객센터를 선정한 건 노동집약적 부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상대적으로 신속히 배치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크레스타의 에남 CEO는 "우리회사의 실시간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잠재성이 크다. 광범위한 지식작업에서 고용, 제품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현명한 조력자로 기능한다"며 "인공지능 기술은 현재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범용적"이라고 말했다.

NYT는 "스탠퍼드대 브린욜프슨 소장은 에남 CEO의 판단이 맞다는 데 베팅했고, 노스웨스턴의 고든 교수는 인공지능 범용성이 의심스럽다는 데 돈을 걸었다"고 전했다. 내기에서 누가 이길지 관심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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