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
교육부 '15만 인재양성' 국정과제 승부수
대통령, 첨단인력 양성 방안 강하게 주문 … 대학-기업 미래예측·대응력이 열쇠
정부가 반도체 관련학과 신·증설을 통해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풀어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키우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학과 학부 정원이 1300명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9일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교육부는 반도체 전문 인재를 키우고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이들 정부 부처와 전문기관이 참여하는 첨단산업 인재 양성 특별팀(TF)을 꾸리고 정책 과제를 발굴해 왔다.
교육부가 반도체 인재 15만 양성 계획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교육부 등 정부 부처가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40여일 만에 나온 방안이다.
윤 대통령은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이 발언은 기존 교육부가 관료주의에 빠져 첨단 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고등교육 정책에 실패했다는 대통령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에 교육부가 제시한 방안은 장밋빛 청사진이다. 2031년까지 수준별 반도체 인재를 적기에 충분히 양성하고,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 바로 투입가능한 반도체 분야 인재를 양성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현장 전문 반도체 교원을 확보하며, 최신 반도체 연구 설비가 권역별로 설치된다.
◆반도체 인재 최대 15만명 양성 =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산업 인력은 현재 약 17만7000여명에서 연평균 5.6%씩 증가해 10년 후인 2031년에는 약 30만4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반도체산업에서 12만7000여명의 신규 인력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연간 약 1만1000명을 새롭게 채용하는데 2020년 기준으로 직업계고와 대학, 대학원 신규 졸업자 중 반도체산업 취업자는 연간 5000명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인력 공급 규모가 유지된다면 인력난이 심화한다는 우려에 따라 정부가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부문 인력 증가에 대비해 대학이 첨단분야 학과 신·증설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학부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첨단분야 겸임·초빙교원 자격요건도 완화하고 국립대는 정부와 협의를 거쳐 교수 정원이 배정되는 점을 고려해 학과 증설 관련 전임교원 확보 기준을 하향조정한다.
별도의 학과 설치 없이 기존 학과의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릴 수 있는 '계약정원제'도 신설한다. 기존 학과에서 기업체와 협의해 정원외로 '채용 조건'의 학생을 뽑아 교육하는 방식이다.
직업계고 학과를 개편하고 교육역량이 우수한 대학 20곳을 반도체 특성화대학·대학원으로 지정한다. 이렇게 되면 석사 1100명, 학사 2000명, 전문학사 1000명, 직업계고 1600명 등 반도체 관련학과 정원이 최대 5700명까지 늘어난다.
정부는 정원을 늘리는 것과 별개로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확충한다. 전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산학연 프로젝트를 확충하고 타 전공 학생도 반도체 인력이 될 수 있도록 단기 집중교육과정 사업을 신설한다.
현장에 즉시 투입가능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직업계고·전문대에 기업수요 맞춤형 프로그램과 일·학습 병행 교육과정도 늘린다. 이처럼 재교육 등 재정지원사업으로 혜택을 받는 학생과 재직자 10만5000명을 합하면 반도체 인재를 최대 15만명 가량 키워낼 수 있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지방대학 반발 해소방안 시급 = 반도체 학과 신·증설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비수도권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늘릴 수 있어 비수도권 대학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40개 대학에 반도체학과 학부 증원 관련 수요조사를 한 결과 수도권은 14개교가 1266명, 지방은 13개교가 611명 증원 의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수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은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의지와 역량이 있는 대학은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며 "반도체 특성화 대학 또는 대학원을 지정하는 데 있어서 재정적인 지원을 더 집중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교육협의회, 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지방대학발전 특별협의체를 만들어서 지방대 집중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분야 집중지원에 따른 기초학문 타격과 다른 산업과의 불균형 문제가 나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반도체 설계를 잘하려면 시스템은 물론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자과 수업에서 철학과 교수와 함께 '마음공학' 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인문학과 철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는 학문"이라며 "4만5000명은 반도체 분야에서 키우지만 10만5000명은 융합 인력으로 양성한다"고 말했다.
또 "인문학적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증강현실 등 기술과 더불어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문과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반도체 인재 양성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교원 확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반도체 산업현장 전문가를 교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겸임·초빙 교수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으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은 반도체 인재양성을 위한 시스템인 전문교원, 연구실, 장비, 예산 등을 요구 하고 기업은 대학에 반도체 기술과 트렌드 및 현장전문가를 제공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반도체 관련 제품 수요를 예측하고 생산시스템을 갖춰야 인재양성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범부처 및 민관협업 부족" 자인 = 윤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가 예전 일하던 방식과 달리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협의해 이전 교육부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그동안 반도체 인재양성 기반이 미흡한 이유로 '범부처 및 민관협업 부족'을 꼽았다. 정부 부처간 역할 및 기능 분담 부족과 반도체 인재양성을 위한 기업·교육기관 간 소통 및 자원 공유가 미흡했다고 자평한 것이다.
인재양성을 담당하는 부서는 현재 교육부 기획재정부 과기부 산자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분산돼있다. 각 부처들이 제각각 사업을 설계하고 예산을 투입하면 지속성이 떨어지고 분절적인 사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범부처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개별부처에서 예측하는 인재수요를 취합해 국가 차원의 인재양성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에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 마련을 위한 장상윤 교육부 차관 주재 회의에는 기획재정부 과기부 산자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했다. 3대 분야 10대 추진과제 중 교육부 담당 22개, 과기부 10개, 중기부 6개, 산업부 6개, 고용부 4개 가량 된다. 교육부의 역할이 다수를 차지한다. 교육부가 인재양성 선임 부서로 부처간 협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