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노동권 손배·가압류
"손배가압류, 헌법 단체행동권 제약"
'손잡고' 197건 소송 분석, 3160억원 청구 … "노란봉투법안 입법화해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 지난달 22일, 51일 만에 마무리됐지만 손해배상 청구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단과 막판 협상 쟁점은 '민·형사 면책' 조항이었다. 사측이 손배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처벌받는다며 거부해 최종 합의안에 담기지 않았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만 손해배상·가압류로 무력화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배가압류가 가하는 고통은 노조의 파괴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건강권까지 해쳐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다.
손배소송를 제기하지 않으면 '배임'이라는 주장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실제로 쟁의행위 이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는커녕 수사가 된 사례는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51일간 전개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노사의 극적인 합의로 끝났지만 정부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대우조선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만 손해배상·가압류로 무력화하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까지 하면서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사장 이병훈)은 지난달 30일 국회도서관에서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를 열었다.
하태승 변호사(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는 '소송기록을 통해 본 손배가압류 현주소'라는 발제에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수집한 소송기록 197건(손해배상 185건, 가압류 신청 12건)을 공개했다.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 33년간 조사된 손해배상액만 '3160억2865만원'이다. 소송 접수 후 1심 판결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렸고 7년 이상 걸린 경우도 있다.
◆"법원, 쟁의행위 정당성 협소하게 판단" = 소송기록 분석에서 쟁의행위 발생 원인은 △단체교섭·단체협약 체결(82건) △불법파견(36건)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26건) △해고·정리해고(43건) △근로기준법 위반(8건) △기타(41건)이다.
하 변호사는 "법원의 판례 법리가 지나치게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정당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며 "특히 정리해고와 관련해 사법부는 사용자의 경영권에 지나치게 편중된 해석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항한 쟁의행위에 대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조합원 139명에게 제기한 5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리해고'(구조조정)는 노동자의 고의·과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경영권'을 내세웠다. 하 변호사는 "법원은 정리해고를 '고도의 경영상의 결단'에 관한 사항으로서 이에 대항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라고 판단해왔다"며 "단체행동권과 경영권의 조화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법파견'이 문제된 쟁의행위 역시 사법부가 정당성을 인정한 경우는 드물다. 불법파견은 협력업체 소속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되는 사안이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동양시멘트 등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판정(고용노동부)에도 법원은 이와 관련한 쟁의행위에 대해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 변호사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다는 이유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부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의, 현대제철과 협력업체 소속 노조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하 변호사는 "이 판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가 원청이라면,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성 혹은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불법파견에 대한 쟁의행위의 법원 판단도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95%) 개인에게, 노조파괴 수단 = 사용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부당노동행위 이른바 '노조파괴공작' 수단으로 행사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성기업이다. 2011년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 전략을 세우고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 80여명을 상대로 4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갑을오토텍 보쉬전장 상신브페이크도 같은 사례다.
상신브레이크는 최종적으로 사용자(법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해 5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소송 접수단계에서는 10억원을 청구했고 조합원의 개인재산에 4억1000만원의 가압류가 대법원 판결 확정될 때까지 유지됐다. 하 변호사는 "당시 조합원들이 느꼈을 위압감과 공포감을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소송은 노조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조합원 개인에 대한 청구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손잡고가 수집한 197건의 사건기록 중 노조 단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한 사건은 19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87건(94.9%)은 조합원 개인 또는 노조와 공동 피고로 제기한 소송이었다. 기업이 아닌 국가가 제기한 소송도 14건이나 됐다.
대법원(2005다30610 사건)은 파업에 단순 참가한 일반 조합원의 경우 노조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노무제공을 중단한 사정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 변호사는 "사용자와 사용자의 소송대리인이 이 같은 법리를 잘 알면서도 조합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확대해 소송이 남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사용자가 요구조건을 걸고 소송 취하로 종결된 사건도 상당했다. 수집된 소송기록 중 35건이 '조건부 소 취하'가 이뤄졌다. △희망퇴직(11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포기(17건) △노조탈퇴(5건) △기타(반성문 등, 2건) 등의 조건으로 소송이 취하됐다.
하 변호사는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단순히 재산상의 피해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노조에 대한 탄압과 공포감 유발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손배가압류로 무력화되고 있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3개의 발의된 '노란봉투법'안들이 신속히 논의되고 입법되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법 제3조를 개정해 쟁의행위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손배가압류에 안타까움을 느낀 시민들이 노란봉투에 모금을 시작하면서 불려졌다.
[관련기사]
▶ 손해배상·가압류 건강에 악영향
▶ 손배소 안하면 배임? "그런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