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우리말
공공언어에 우리말 사용, 국민 알권리 지킨다
'보이스피싱' 대신 '사기전화' '문자사기' 쉬운 표현 … '새말모임', '언택트' 대신 우리말 '비대면' 선정
인터뷰 - 김미형 국어문화원연합회장
"공공언어에 외래어나 어려운 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국민들이 필수 정보를 놓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5일 내일신문 대회의실에서 만난 김미형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의 일성이다. 그는 "'비말'이 아닌 '침방울'이라고 표현하면 일반인들이 쉽게 정부 정책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공공언어에서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전국 22곳에 이르는 국어문화원을 계획·관리·지원하며 공공언어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는 기관이다. 국어문화원연합회의 보다 자세한 역할과 공공언어에서 쉬운 우리말 쓰기의 중요성,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성과 등을 들었다.
■국어문화원과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인가.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됐다. 국어문화원은 국어기본법 제24조에 따라 국민의 국어 능력을 높이고 국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기관이다.
국어문화원은 올바른 표기법이나 문장 감수 등 국어 상담, 어르신이나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육, 한글·한국어 관련 문화행사 개최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제주 등에서는 고유 지역어를 연구·조사하는 작업도 한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각 문화원을 계획·관리·지원하며 정부 부처와 언론사를 대상으로 공공언어 개선사업을 하고 있다. 공공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쉽고 바르고 품격 있어야 한다. 국민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주요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언어에 잘못 쓰인 용어나 외국어 신조어를 우리 국민 누구나 보고 듣는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공공언어가 쉬운 우리말로 쓰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이든 공공언어가 될 수 있다. 공공기관이 작성한 공문서뿐 아니라 신문·방송에 쓰인 대중매체 언어, 은행과 터미널 등 공용장소에 표기된 언어는 모두 공공언어에 포함된다. 보험 약관이나 제품 설명서, 각종 연설문, 안내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보이스피싱을 주의하라'는 문구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런데 정작 보이스피싱 수법에 가장 취약한 노년층은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사기전화'나 '문자사기'로 바꾸면 오래 설명할 필요 없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노쇼백신'이 '잔여백신'으로 순화된 이후 백신 접종률이 상승했다.
관공서의 정책 홍보물이나 공공기관 누리집을 보면 '에코마일리지' '리셀테크' '홈코노미' 등 생소한 용어들이 가득하다. '에코'를 '친환경', '마일리지'는 '이용실적', '리셀테크'는 '재판매 투자', '홈코노미'는 '재택경제활동'으로 바꾸면 좋겠다. 그러면 정책을 더 잘 홍보할 수 있고 국민의 알권리도 지킬 수 있다.
■공공언어를 쉽게 쓰지 않으면 국민이 정책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 국민들은 공공기관이나 언론, 기업이 어려운 말을 사용해도 항의를 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러다 점차 정보에서 소외된다. 정부나 언론 등은 듣는 이를 고려하기 보다는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만 주안점을 둔다. 때문에 공공언어를 작성하는 쪽과 국민, 두 집단 사이에 괴리감이 갈수록 커진다.
공공언어 전달자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학력이나 연령, 외국어 능력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언어가 정확하게 인지돼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도 바뀐다. 국민이 사회의 중요한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이해해야 시대의 변화를 통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이룰 수 있다.
■외국어, 신조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말로 탄생하나.
한 번 퍼진 말은 바이러스와 같다. 순식간에 퍼지며 다시 바꾸기 힘들다는 의미다. 새로운 외국어는 퍼지기 전 2일 안에 수정하도록 권고한다. 국어문화원 기관 중 하나인 한글문화연대는 공공기관 보도자료, 언론 기사를 매일 점검해 외국어 남용 실태를 조사한다. 보도자료나 기사에서 외국어가 발견되면 48시간 안에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전자우편이나 공문을 보낸다.
다듬을 말과 다음은 말 목록은 여러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새말모임'을 통해 꾸준히 관리한다. 예컨대 '언택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면 이 말을 국립국어원으로 보내 쉬운 우리말로 다듬도록 요청한다. 국립국어원은 새말모임을 열어 대체할 우리말 후보를 선정한 이후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말을 채택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비대면'이 선정됐다. 채택된 대체어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보도자료로 발표하고 다듬은 말 목록에 넣어 관리한다.
■지금까지 추진한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성과는 무엇인가.
전철역이나 관공서 아파트관리사무소 등에 비치돼 있는 '심장충격기'는 얼마 전까지 'AED' '자동제세동기'라 불렸다. 누구나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을 보면 재빨리 꺼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어려운 용어 때문에 어디에 어떻게 쓰는 기기인지도 몰랐던 사람이 대다수였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 있는 말은 무조건 직관적이고 쉬워야 한다.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꾼 것도 오랜 시간 노력해 이뤄낸 성과다. '리플'을 '댓글'로, '부스터샷'을 '추가접종'으로 이해하기 쉽게 바꾼 예시도 있다.
■청소년들의 학업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과서에 한자 표기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아이들이 한자를 익히면 문해력이 높아지고 학업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틀렸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기는 하지만 국어 교육은 한자 교육이 아니다.
'부모' '유치원' '자동차' 모두 한자지만 뜻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이는 낱말의 뜻이 한자 표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말에 기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분·적분'을 이해할 때도 필요한 건 수학적 지식이지 한자 표기와 그 뜻풀이가 아니다.
낯선 어휘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노출과 사용이다. 국어도 영어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내 새로운 단어를 익혀야 한다. 모국어라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미국의 경우 영어 교과만 어휘 독서 토론 등 5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을 정도로 영어 교육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개인의 국어 실력은 곧 사고의 수준이 된다. 영어와 수학 교육이 국어 교육에 앞선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우리말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뉴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더블링'이다. 확진자가 '2배'로 늘었다고 하면 될 것을 방송이나 기사 모두 '더블링'이라는 표현을 쓴다.
공공언어가 친절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순화되지 않은 외국어와 신조어로 불편을 겪에 된다면 이를 고쳐줄 것을 국민동의 청원이나 시민참여 게시판 등에 당당하게 요구하면 좋겠다. 이는 국민의 권리다.
국어의 목적은 소통이다. 이를 위해선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인식을 당연시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언어는 그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써도 된다. 하지만 공공언어만큼은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정보 격차는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권이자 배려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